며칠 전 제 페북에 한국 신학교에서 목회상담학을 가르치는 후배목사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정말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픈 사람에게 몇 년 전 너무 큰 책임을 주었습니다. 불쌍하기도 하고 ..또 너무나 허탈..화가 나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아픈 사람을 늘 ‘너무 늦게’ 발견한다는 사실입니다. …치유를 위해선 온정이, 미래를 위해선 냉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동안 설교를 하면서 가끔 박근혜대통령에 대해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하면서 자녀들을 잃은 세월호 부모들에 대해서 어찌 그리 몰인정할 정도로 냉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과 우리 민족 역사의 큰 아픔인 위안부문제에 대한 친일적인 판단이나 대한민국 건국일을 포함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 역사에 대한 아전인수격인 해석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이제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이해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우리는 상식선에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 혹시나 초월적인 그 무엇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가막힌 일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사이비종교 무당과 같은 최태민이란 사람에게 마음을 빼았기고 그 딸 최순실에게 인생의 외로움을 맡기면서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을 의존해 버리는 참담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인파가 거리를 메우고 있고 언론은 매일 놀라운 정보를 토해냅니다. 나아가서 그동안 조찬기도회와 같은 모임을 통해 정권의 시녀역활을 앞장서 해낸 교계 인물들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걱정스럽습니다. 당연하게 분노하고 거리로 나서야 하지만 행여라도 정당한 법적절차를 밟아 심판되어야 할 죄인들에게 순진한 또 다른 군중의 동정심을 선물로 안겨주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전에 유기성목사가 이런 어두운 역사의 현실일수록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했더니 비난의 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님 바라보겠다는 사람에게 시비 거느라 에너지 소모할 일 아닙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럴 때 일수록 더욱 기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은 우리 눈을 열어 대한민국 법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할 때입니다. 라틴어 번역은 “뱀처럼 빈틈이 없고 비둘기처럼 단순하라”고 했습니다.

오래전 세계개혁교회연맹 총회장을 지낸 알렌 부섹목사가 ‘순진이여 안녕’(Farewell to Innocence)라는 책에서 기독교인들이 무기력한 순진에서 깨어나야 역사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하면서 “악한 역사의 현실을 바꾸는 일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구조에서 혜택을 누리면서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정치적이라고 비난만 일삼는 기독교들은 악한 세력의 동반자들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지켜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