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통해 세상은 나라의 대통령과 주지사 또는 시장의 리더쉽 그리고 질병관리센터 발표나 백신개발 등에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교회는 이번 전염병이 하나님 징벌이니 회개하자며 하나님이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은 물론 교회를 새롭게 하시려는 뜻이 있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코로나, 이 큰 난리통에 정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저도 회개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새롭게 살아야 하니까요. 더 이상 창조세계 파괴하지 말아야 하니 아마존 산림을 포함하여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저지르는 생태계 파괴를 중단해야 합니다. 개인들도 필요 이상의 소비로 건강을 망치고, 쓰레기를 많이 내보내고, 과대한 에너지 소모로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일을 그만해야 합니다. 9.11 테러사건 때 뉴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뉴욕이 월스트리트라는 물질만능주의 맘모니즘의 중심지이고 동성애가 만연해서 하나님이 징벌하셨다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이티 대지진 때 가톨릭 대성당 무너진 곳을 방문했더니 어느 선교사가 가톨릭을 무너뜨리려고 하나님이 지진을 내리셨다는 말을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삼풍 백화점 무너졌을 때는 수요예배 드리지 않고 쇼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벌주셨다고 유명한 목사가 설교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의 때가 성경에는 분명히 나옵니다. 언제 어느 때나 악의적이고 억지스러운 레파토리로 재해당한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정죄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거론할 가치가 없지만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 뜻에 따라 살기 위해 돌아서는 회개가 필요한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입니다.
교회로 촛점을 맞춘다면 예배당에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어려움, 예배 출석과 헌금이 줄고 성도들이 교제를 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큽니다. 교회의 힘은 모임에서 옵니다. 예배를 함께 드림에서 오는 은혜가 큽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필요한지 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예배당이 열리면 예배당에서 그리하는 것이고,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드리면 가정에서 최고 최선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예수님이 성령의 이끌림으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 받으신 사탄마귀의 시험으로 생각해보면 물질과 권력 명예의 욕심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께만 무릎 꿇게 만들기 위해 우리를 정금같이 만드는 용광로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나와 내 가정이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고 주님 사랑과 십자가 은혜 부활의 승리를 믿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어나야 하는 믿음의 과제들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도 교회 이런저런 문제로 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납니다. 어제는 교회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네 아이와 아빠에게 “여기 개인소유의 땅이니 들어오면 안됩니다”라고 했더니 “코로나 사태가 아니면 나도 여기에 들어와서 아이와 자전거 타지 않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 주차장에서 다쳐서 교회를 고소하는 사건들이 있어서 그랬는데… 조심해서 타요”했습니다. 마스크를 썼지만 놀래서 저를 바라보는 어린 소녀의 눈을 보면서 목사라는 인간이 참 못할 말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말도 안되는 일로 교회가 고소당해서 피곤한 일들이 여러번 있었지만, 최근 50년 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사건으로 교회가 고소를 당해서 변호사를 선정해야 하는 일로 신경이 많이 예민해 진것 같습니다. 신경도 예민해지고 세상 일들이 쉽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생각하며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다 보면 내 눈과 마음이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영어예배 축도를 눈 뜨고 손을 활짝 열어서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구원하시고 성령께서 힘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으로 나가세요!” 정작 축도는 그렇게 하면서 목사인 나는 눈에 보이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짓눌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초대교회부터 교회는 핍박과 환란 순교의 역사를 거치면서 예수 구원 복음의 역사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어려움과 아픔을 통해서도 우리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잃지 않고 예수 구원 사랑 생명의 복음 확장에 최고 최선으로 쓰임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