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그제 달라스 경찰 5명이 “흑인이 경찰에 시달린 사건에 분노했다. 백인을 죽이고 싶었다. 특별히 백인경찰들을 죽이려고 했다.”고 외친 저격수가 쏜 총을 맞고 살해당했습니다. 그날은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운동이 주도한 데모가 있던 날입니다. 쉴새없이 계속되는 흑인 젊은이들이 백인경찰들이 쏜 총에 죽어가고 있는 공권력의 인종차별 현실에 항거하는 데모였습니다. 데모자체는 평화적이었는데 이 기회를 악용해서 백인경찰들을 저격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제 뉴욕에서 있었던 Black Lives Matter 데모에서는 어느 흑인 청년이 ‘살해당한 달라스 백인 경찰 5명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싸인을 들고 데모에 참여하였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백인 경찰의 손에 억울하게 죽임당한 흑인 젊은이들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삶의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미국 인종차별의 비극적인 현실은 경찰이 쏜 총에 죽는 흑인들의 비율이 백인들보다 21배가 높다는 것입니다. 며칠전 있었던 미네소타 경찰이 쏜 총에 죽은 흑인 젊은이의 경우도 주지사가 발표하기를 “인종차별적인 경찰의 반응이었다.”고 했습니다. 백인 주지사의 입장에서도 그 사람이 백인이라면 그렇게 경찰이 총을 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달라스 백인경찰들의 죽음도 너무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들에게도 아내가 있고 딸이 있고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경찰이 되어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한 꿈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목사가 이끌었던 인권운동의 역사가 5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그가 외쳤던 ‘사람을 피부색으로 평가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하는 세상’의 갈 길이 먼것입니다. 지난달 스탠포드 대학에서 일어났던 강간사건 재판에서도 범인 백인 수영선수에 대해 언론은 그의 수영기록이 어떠한가를 밝혔습니다. 강간범일지라도 그가 얼마나 수영을 잘하는지 그의 미래가 미국 수영계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언론은 인식시키려 했다는 비난을 면치못하는 것입니다. 백인 청년의 미래가 중요한 것처럼 흑인청년의 미래도 중요한 것이고 부자집 자녀의 미래가 중요한 것 만큼 가난한 집 자녀의 미래도 중요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언론을 포함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정부기관은 그것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2003년도 죠지 부쉬 1세 대통령이 이락전쟁을 시작하면서 하루 공습으로 10만명이 넘는 이락인들을 살해했을때 시카고 연방청사 앞에 가서 일인데모를 했었습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폭탄에 죽어간 이락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날 동양인 목사가 홀로 미국정부를 비판하는 데모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 와중에 시카고 기마 경찰들은 말위에 올라 저를 둘러싸고 평화적인 데모를 내가 스스로 끝낼때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일반 시민들 가운데 저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카고 경찰들은 내가 미국 시민으로 가진 권리를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미국 인종차별의 비극적인 현실은 인종문제만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생각과 문화, 종교를 가졌다고 해도 함부로 죽이는 일들은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미국 건국의 정신이란 어떤 인간이라도 사상과 종교, 생각, 표현의 자유와 인격 그리고 안녕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위대함입니다.

지난주간 미네소타와 루이지아나에서 백인 경찰들의 총에 맞아 죽어간 흑인 젊은이들, 달라스에서 살해당한 백인 경찰들의 영혼과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를 기원합니다. 하나님 혼돈과 슬픔에 잠긴 미국을 위로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