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이 다시 열리는 ‘리오프닝’(Reopening)을 앞두고 안전 위생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연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 예배당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7월1일 부터 40일간 ‘느헤미아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합니다. 예배당 오픈이 건물 준비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이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더 활짝 열리기를 바래서입니다. 맨하탄 선교센터 공사도 지난주 부터 재개 되었습니다. 기도원/농장은 트랙터를 구입해서 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밭농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7월에 교회 마당을 자동차로 지나가는 ‘드라이브 인 졸업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양과 나눔과 섬김의 사역을 잘 감당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우리가 알던 상식이 아닌 새로운 상식이 적용된다는 뜻으로 ‘뉴 노멀’(New Normal)이란 말이 회자됩니다. 위생을 위한 ‘거리두기’가 여러 차원에서 상식화 될 것이고 왠만한 모임은 화상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깝게 만나는 것이 ‘비상식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단절과 소외, 외로움이 커질 것이기에 교회는 온라인 예배는 물론 성도들과의 소통을 발전시킬 ‘하이테크’와 성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목양을 위해 ‘하이터치’ 목회를 개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 만이 아닙니다. 사회 구조적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주 미네아폴리스 시의회는 ‘경찰해체’ 추진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동안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경찰’에 대한 기본개념보다 ‘커뮤니티 안전요원제’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외에도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움작임이 미국에서 여러곳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뉴욕연회에서는 ‘뉴욕연회 백인우월주의 구조 해체’를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연회에 뿌리 박힌 백인중심적 구조를 해체 시키자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경찰해체도 그렇고 연회 ‘백인우월주의 구조 해체’도 그렇고, 우려가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아무리 좋은 일도 내거는 말보다 누가 어떤 과정으로 일을 만들어 가는지가 중요합니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대통령이 되면서 직전 백인 대통령을 부통령 삼아 흑백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바로 옆에 있는 짐바브웨 무가베 대통령은 백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시켰습니다. 결과는 얼마되지 않아 남아공 GNP 2만불, 짐바브웨 2천불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국민 수입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 뜨리기는 쉬운 것인데, 이상적인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됨됨이도 많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했습니다. 만델라는 과거의 적이라도 나라 발전의 동반자 삼아 함께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리더쉽을 발휘했습니다. 저는 지난 수년간 우리가 속한 뉴욕연회에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문제를 거론해 왔습니다. 그런데 구조악 해체를 제대로 하려면 무가베의 방법이 아니라 만델라의 그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 하나 쫓아내고 일곱귀신 들어온 문제를 말씀하셨다는 것 기억해야 합니다.

‘경찰해체’의 주장도 그렇습니다. 인종차별 철폐 시위가 일어나는 곳에서 한인상점들의 약탈 피해가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미국 역사를 보면 위기의 때 이민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가 반복되었습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은, 위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반이민법을 만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밑으로는 함부로 아시안들에게 혐오발언하고 폭력을 휘두른 못된 인간들이 저지릅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아시안 혐오차별과 한인상점 약탈 현실을 보면서 세상 변하는 때 한인공동체가 정의로운 사회변혁에 동참해야 하면서도 우리의 권익과 안전을 지켜내는 지혜로운 분별과 선택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배당 문이 열리는 변화만이 아닙니다. 세상이 변합니다. 때로 해체도 필요하고 해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모든 일에 회개가 없으면 인간 죄악은 반복될 뿐입니다. 그런데 회개는 우리가 판단하는 악하고 못된 인간들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을 순종해서 선과 의를 행해야 하는 나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심정이 아니고 자기 의로움에 빠지면 아무리 좋은 말, 의로운 생각이라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