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보일러가 망가져서 지난 주간 새벽기도 때 예배당 곳곳에 작은 전기 히터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습니다. 성도추모주일을 위해 사다 놓은 국화들은 제대로 피지를 못하고 시들어 가니 권사님들은 살려보려고 밖에 내다 물을 주고 다시 들여다 놓기를 반복하는데 목회실에서는 이제 내다 버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내복을 입고 새벽기도를 인도하다가 예배당 여러 곳 놓여있는 히터들을 보고 몇 년 전 예배당 지붕이 새서 여기저기 물통을 놓았던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왠지 궁상스런 이런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면서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린 국화들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택 화장실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를 못하고 사무실은 보일러 고장으로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궁상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있었던 뉴욕연회 ‘인종차별 철폐위원회’ 모임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그 모임 ‘흑인교회 사택 문제 분과’에 속해 있습니다. 교회 보일러 이번 주 고쳐질 것이고 사택 화장실은 누가 와서 고치면 되지만 재정이 어려운 교회들은 해결방안이 없습니다. 그런 교회들은 그러다가 교회 문을 닫아야 하고 사택도 방치되면 결국 노란 줄이 둘러지고 ‘출입금지’ 사인이 붙게 됩니다. 재정이 괜찮은 교회에는 정겨울 수도 있는 일들이 어려운 교회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보통 감사주일 헌금은 한 해 부족한 교회 재정을 메꾸고 성탄주일 헌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구제와 선교를 위해 쓰여집니다. 사실 급한 것은 보일러 특별헌금입니다. 이 큰 교회 건물에 필요한 보일러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와 교단분리 문제 이후 어려운 교회들은 생존의 위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머리를 깎으러 갔더니 이발사 첫말이 “목사님, 요즘 동네 경기가 어려워요. 동네 경기와 교회 헌금이 정비례한다고 하는데 목사님 교회는 괜찮나요?” 합니다.
세상이 어려우면 후러싱제일교회도 어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려울 때 언제나 더 어려운 이웃들과 교회를 위해 넉넉히 나누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럴 수 있던 것은 괜찮은 교인들이 넉넉하게 헌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눅12:48) 그래도 괜찮은 분들은 올해에도 헌금 많이 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백인 목사들은 보편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지는 권리주장을 잘하고 백인 교회 교인들은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흑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소수민족 목사들은 자기 것 챙기는 것 어려워하고 교인들 역시 자기들도 어려우니 목사의 사례는 물론 사택 문제도 그러려니 여긴다고 합니다. 그러니 소수민족 목사들도 목회 환경이 좋은 백인 교회 목회를 선호하게 되고 소수민족 어려운 교회들은 그래서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지난주 흑인교회 사택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를 한 후 한편으로는 내가 뭐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정의와 평화라는 것이 먼 나라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내 연회에 있는 내 동료들의 문제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가 속한 연회에서, 살기 어려운 조건의 사택에 살아야 하는 흑인 목사들의 현실을 방치하고 무관심한 것이 바로 인종차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칭찬받을만 합니다.
정의와 평화는 빈부의 격차, 불공평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예수님 사랑과 은혜의 나눔으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