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금 양일 내쉬빌에서 모인 연합감리교 ‘중도’그룹 모임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지난 10여년 미국 시민사회는 동성혼, 주류 기성교단들은 동성애자 목사안수 문제로 진통을 겪어왔습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몇 교단들은 동성애자 목사안수를 통과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사회문제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연합감리교단은 오히려 이 사안에 있어서는 보수입장을 고수하면서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교단 법으로 확인해 왔습니다. 이로인해 교단분열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고 ‘중도’ 그룹들이 모여 분열을 막고 교단 위기의 때를 하나님 선교 기회로 삼아보자고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모임에 참여하고 과연 중도그룹이 양극단화 된 현실에서 어떤 역활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만 늘었습니다. 보수진영은 동성애는 성경에서 분명히 죄라 밝히고 있다는 성경 절대권위를 주장하고 진보진영은 성경은 정체된 문자가 아니라 이땅 오늘의 현실에서 살리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좁혀지지 않는 양극간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려운 노릇입니다.

저는 ‘중도’는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기독교 현실주의’(Christian Realism)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독교현실주의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성취될 수 없다는 신학이론입니다. 인간사회에 내재하는 타락의 현실 때문입니다. 니버는 세상 현실에서 인간의 완전함 추구는 허상이라 주장합니다. 이런 입장은 세계2차대전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나찌 독일 히틀러의 유대인 600만 학살 홀로코스트 역사를 통해 그리고 쏘련의 스탈린의 악행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상의 잔악함을 그는 경험한 것입니다. 세상 이념과 사상이 만들어 보려는 유토피아(Utopia)라는 것이 ‘이상향’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단어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기독교현실주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어보려한 대표적인 인물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이고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기독교 현실주의는 어떤 사회문제 해결책이 비록 완전하지 못한다고 해도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으로 예수님 사랑과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기본 마음자세는 너나 나나 인간 모두는 완전하지 못한 죄인됨을 겸허하게 고백하고 인정하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양극단의 보수와 진보에게는 이런 인간이 가져야 할 죄의 고백과 겸손함이 부족합니다. ‘교만’과 ‘자기 의’가 너무 강하게 드러납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자기 생전에 ‘완전과 성화’(perfection, sanctification)을 이룰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이 약해지면서 기회만 있으면 성만찬을 하면서 주님의 살과 피로 자기 육신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웨슬레와 같은 인간은 세상에 그리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리교인들은 완전과 성화를 믿는다 고백하지만 삶의 현실은 근처에 접근이 어렵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세상현실이 어렵다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안에서 최고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기지 말고 우리 자신들에게도 성령이 역사하실 공간을 준비하고 내 반대편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것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물론 교단도 주님의 몸이니 주님이 책임져 주시리라 믿을 뿐입니다. 교회나 교단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의 결정일 뿐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완성은 주님 오셔야 이루어집니다. 기독교 현실주의가 가지는 기본 입장은 분명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고 완전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 겸손하게 인정하고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 뜻 실천 말씀 순종의 사명에 최고 최선을 드리는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이 악하니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단문제 해결 중도의 역할은 모두가 민주적 과정을 존중함으로 하나님 뜻 실현이 가능하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고 불평불만이나 파괴적 언행이 아니라 하나님 역사를 소망하고 교회에 주어진 기본 선교적 사명을 최선다해 감당해 나가는 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