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제가 모셨던 담임목사님께서 목회(牧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래처럼 낱알로 살아간다. 이 낱알 인간은 상품(commodity)을 닮아가며 고독을 안고 있다. 목회의 ‘회’(會)자는 이런 현실에 대하여 어떤 살아 숨쉬는 세포핵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community), 창조적 조직체(creative organism)를 뜻한다. 여기서 ‘살아 숨쉬는 핵’이란 역사에 한번 살다 가신 예수의 환상(vision)을 의미한다. 둘째로 현대인은 생산을 위한 조직내에서 기계 부품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다. 목회의 ‘목’(牧)자는 인간이 설계한 어쎔블리 라인에 의한 효율적인 생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나 양떼처럼 절로 커가게 하는 느긋한 예술을 말한다. 여기에서 ‘절로 크게한다’는 것은 어느 역사 시점에도 침투하시는 예수의 임재를 일어나게 한다는 뜻이다.”
그 말씀 가운데서 제가 고민하는 과제는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예수의 환상(Vision)’이 열매 맺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예수의 임재(Presence)’가 어떻게 현실화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 요즘 우리교회 청년들과 청소년들 중심으로 ‘이웃에게 행복이 되는 우리 교회’를 주제로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소박하게는 교육관 옥상 텃밭 가꾸기를 준비중에 있고 넓은 세상으로 꿈을 확장하기 위해 지난주간에는 와싱톤에서 열린 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에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국회의원들도 만나고 넓은 세계를 향해 생각과 마음을 열어가는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요즘은 글로칼(Glocal)이란 말로 표현하지만 제가 목회 스텝들에게 많이 말하는 것은 ‘생각은 글로발하게 실천은 삶의 현장 로칼에서’(Think Globally Work Locally)입니다. 그래서 선교라는 것도 바다 건너 다른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강조합니다. 우리 선교의 현장은 성도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무너진 가정들과 방치된 아이들, 건강문제로 아파하는 아이들 어른들, 앞길이 보이지 않는 생업의 답답함, 대책이 없는 신분의 문제, 회복이 불가능한 과거와 파괴된 현실과 가로막힌 미래…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의 손길이 간절한 삶의 현실이 선교지인 것입니다.
제가 80년대에 시카고에서 대학생 목회잡지를 내면서 글을 부탁드렸더니 ‘대학목회’를 ‘예수의 큰 가르침이 있는 목회’라고 내 전임자이신 목사님은 뜻을 푸셨습니다. 이런 목회란 상품과 기계를 모방해가는 인간에게 태초부터 새겨져 있는 얼굴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예술이고, 이익과 효율만을 가치로 여기는 인간들 틈에서 가슴과 가슴을 이어 놓는 농사이기에…, 우물 없는 마당과 불 없는 화로와 같은 교육현실에서 ‘대학목회’는 젊은시절에 영원으로 화한 예수의 복음으로 우물물을 파고 화롯불을 담는 노력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작은 가르침 ‘소학’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가르침이라 한다면 ‘대학’, 큰 가르침은 삶과 영혼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손짓하고 일깨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제게 항상 “목회는 대어를 잡는 낚시다. 그물로 아무것이나 쓸어 담으려는 목회 하지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예수의 큰 가르침이 있는 교회가 되는 목회를 할 것인지 지금도 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라도 무너진 것들을 재건하는 일, 목마른 이들을 위해 우물을 파는 일,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교회의 사명은 변하지 않는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