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도자라고 생각하더라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면, 그사람은 그저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구역회에서 2018년도 교회 리더들을 세웠습니다. 구역회를 인도하면서 김성찬감리사께서 주의 몸된 교회를 눈물과 기도로 사랑하는 리더들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가 연회 리더교회로서 지난 2년간 연회분담금 최고로 납부했고 연회쎈타 개조비용 10만불 지원해 준것에 감독님 감사를 대신했습니다.

저는 요즘 징검다리와 디딤돌의 역활을 많이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한인총회 중앙위원회에 참석해서 내가 미래대책위원장이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너무 관심가지지 말고 변하지 않을 목회의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고 발언을 하면서 나도 그동안 할만큼 오래 한인총회를 위해 일했으니 뒤로 물러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4-50대 목사들이 교단이 어려울 때 나몰라라 뒤로 물러나려고 몸을 사린다고 성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버릇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할만큼했는데 너희들은 제대로 뭐 한 일이 있다고 감히 비판을 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곧장 후회했습니다. 선배는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고 비판을 한 것인데 짜증내면서 화를 낸다는 것은 속좁은 처사였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대륙을 건너서 먼 거리를 날아오는 샌드힐 두루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현저한 특성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지도자를 교대로 세운다. 그 어떤 새도 항상 전면에 나설 수는 없다. 둘째로, 그들은 거친 바람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지도자를 세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리의 새가 인도해 나가는 동안 나머지 새들은 격려의 울음 소리를 내면서 따른다.”Bruce Larson, “Wind and Fire”) 건강한 공동체에는 항상 필요에 따라 앞에 나서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면서 함께 거친 바람을 헤치고 나가는 성숙한 지도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건강한 지도자들은 자신을 객관화 시킬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산속의 한그루 나무를 보는 섬세함이 있으면서도 전체 숲을 볼 줄 아는 넓은 분석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책임감과 사명의식이 요구됩니다. 또한 멘토링(mentoring)의 권위자인 헨드릭스가 “만약 당신이 계속 지도자의 입장에 서기 원한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와 같이 계속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사람 모여 사는 사회에는 비리가 있다. 비리에 대해 한번도 입을 열지 못하는 자는 비겁 쪽에 서 있는 것이고, 한시도 입을 쉬지 않는 자는 야심 쪽에 가깝다. ….사람이 비겁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신념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야심적인 인간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속의 보챔이 심하기 때문이다. 신념이란 걸 귀하게 여길 줄 알고, 보챔이 멈춘 사람을 신앙인이라 한다. 신앙인은 비굴한 인간처럼 사욕을 취함도 없다. 때문에 세상 끝날까지 비겁한 자들에게도 비난을 듣고, 야심꾼들에게도 욕을 먹으니 입을 열기도 하고, 다물기도 하면서, 고요히 자기의 소신대로 살다 갈 뿐이다.”(곽노순, “그대 삶의 먼동이 트는 날”)

완전한 교회도 완전한 교인도 없습니다. 물론 완전한 목사도 없습니다. 성숙한 교인, 건강한 교회가 우리의 꿈입니다. 저도 비겁해 지거나 야심의 노예가 되지않고 믿음의 신념을 가지고 소신 껏 살아 갈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