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고 이승운목사님 20주기 추모예배가 교회에서 있습니다. 제가 이승운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1980년 봄, 보스톤신학대학원 1학년 2학기때였습니다. 연합감리교 종교와 인종국 부총무로 계시면서 총무셨던 Woody White감독님과 학교를 방문하셨습니다. 미국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당당하게 인종차별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당시 기를 펴지못하고 학교를 다니고 있던 저로서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그분이 너무 높은 분이라고 여겨져서 인사를 하지 못했고 30대에는 저 같은 진보적인 목사를 싫어하는 보수 목사라는 선입견으로 가능한 멀리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인사 한번, 악수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승운 목사님과는 전혀 개인적 만남이 없었지만 이목사님의 사촌형님 되시는 이승만 목사님이 저를 많이 아껴주셨습니다. 이승만목사님은 미국 교회협의회(NCC) 회장과 미연합장로교단 총회장을 지내셨고, 통일운동의 선구자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승만목사님이 세상 떠나실 때 유언을 남기시길 자신의 장례는 팔레스타인 출신 연합장로교단 총회장이 집례를 하고 설교와 축도는 감리교 목사인 제가 하도록 유언을 남기셔서 그리 했을 정도로 저를 각별하게 사랑해주셨습니다.
제가 애틀란타에서 목회할 때 이승운 목사님의 장남 Eugene목사가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영어목회를 했습니다. 손자 돌잔치에서 축복기도를 하기 전에 아기를 내 품에 안고 제가 “네 할아버지가 내가 오늘 너를 품에 안고 이렇게 축복기도 하는 날이 있을 줄 알았다면 살아계실 때 나에게 좀 잘하셨을텐데 아쉽다.” 하며 웃었던 일이 있습니다.
제게 왜 20주기 추모예배를 드리는지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이민초기에 교회를 세우고 지켜오신 어른들의 헌신을 되새김질 하고자 함입니다. 한인의 이민이 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신 1세들이 있어서 오늘의 교회는 가능했습니다. 이목사님은 교회 부흥을 위해 전념하시다 하나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이목사님 세대 어른들께 목회 열심히 안한다고 야단을 가장 많이 맞은 목사 가운데 둘째라면 서러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어느새부터인가 이제는 제가 그 세대가 되어 후배들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지키고 세우는 것이 너무도 중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목사님은 후러싱제일교회를 한인연합감리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1,000명의 한계를 뛰어 넘는 교회로, 그리고 뉴욕연회 최대의 교회로 부흥시키신 목사님이십니다. 저도 교회를 부흥시킨다는 것이 목사와 교인들에게 어떤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아프도록 체험했기에 이목사님의 목회가 어떠했을지 잘 알 것 같습니다.
역사를 보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세우는 세대가 있었고, 혜택만 누리는 세대가 있었는가 하면, 또 주어진 것을 잘 지켜내지도 못하는 세대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교단의 현실은 물론 이민교회의 현실을 보면 세우기는 커녕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아픈 자책이 필요합니다.
이번 고 이승운목사 추모20주기 세미나와 예배를 위해 후러싱제일교회와 함께 수고한 뉴욕연회 한인코커스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세미나를 위해 멀리 아프리카, 쿠바, 러시아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추모예배 설교를 위해 오신 조영진감독님과 예배순서를 맡아주시기 위해 원근각처에서 오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이승운 목사님 떠나신 후에 Amos선교회를 세우시고 선교를 위해 헌신하신 이익화 사모님과 가족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추모모임이 가능하도록 물심양면으로 협조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도바울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본향으로 떠난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은 남아있는 자들로 인해 온전함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살아 남은자들의 사명은 먼저 천국으로 떠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가 되어 하나님 부르실 때까지 최고와 최선으로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