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많이 불렀던 ‘그날이 오면’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그날이 오면…/그날이 오면…/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그 아픈 추억도/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헛된 꿈이 아니었으리/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어둡고 아픈 시절의 노래지만, 이 노래는 제게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역사의 간증이기에 언제나 은혜로 제 가슴을 울립니다.
제가 세월의 흐름을 가장 실감나게 느끼는 때는 감사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민족공동체의 정체성(Identity)을 출애굽에서 찾는 것처럼, 저에게는 이와 비슷한 것이 감사주일입니다. 벌써 40년도 넘은 추수감사주일에 저의 아버지는 설교를 하시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는 196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서 가족들을 이민 초청하기 위해 거의 10여년 떨어져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지 꼭 3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지만 동생들은 고등학생, 중학생으로 앞이 정말 캄캄했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 저도 60세가 넘었습니다.
평양에서 목회하시던 할아버지께서 투옥되신 후에, 저의 아버지는 16살의 나이로 작은 형과 함께 월남하시다 형은 인민군에게 잡혀 끌려가고, 홀로 내려와 남한에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가진 채 사셨습니다. 40대 중반 늦게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셨는데, 20명도 안되는 작은 교회였기에 “아버지! 코딱지만한 교회 창피하다! ”라고 매 주일마다 교회에 갈때만 되면 저는 불평을 했었습니다. 반면 저의 아버지께서는 늦게 시작한 목회를 무척이나 행복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월급을 받을 수 없는 목회였기에 밤일을 하셨고 결국 육신이 감당을 못해 50도 안된 나이에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저의 인생여정은 절대로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광야의 길에 저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등에 업어서 가나안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현 통일원장관인 저의 어린시절 친구가 뉴욕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아침식사를 하다가 “우리 어린시절에 참 가난했었는데 왜 불행한 기억이 없을까?”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다른 것은 몰라도 너는 교회생활이 행복했잖아. 나는 카톨릭 신자지만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네가 다니던 감리교회에, 평상시에는 교회도 안다니는 친구들과 같이 몰려가서 캐롤 부르고 새벽송 돌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을 살았지만 우리에게는 꿈을 같이 나눈 친구들이 있었고, 사랑이 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시절 경험했던 그 사랑이 오늘을 이겨나가는 힘의 바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7년 제가 애틀란타 목회를 시작할 때, 사람들은 “목회를 잘 할 가망이 없는 목사와 부흥이 불가능한 교회가 만났다”고 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예비하신 부흥과 은혜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2015년 정말 급하게 뉴욕에 와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문제 많은 교회를 회복시킬 사명을 가지고 왔다고, 제가 큰 희생을 각오한 것처럼 말했었는데, 돌이켜 보면 참으로 저의 교만이 민망하기만 합니다. 문제 많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부흥과 확장의 가능성이 꿈틀거리는 교회였습니다.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복음 확장의 넓은 지경을 예비하셨고 쓰임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저에게 허락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여름에 맨하탄 청년선교센터 감사예배를 드렸고, 첫눈이 내려 온 산하가 새 하얀 땅에서 어제 기도원/농장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뉴욕 이민 1번지 후러싱은 중심을 단단히 세우게 하셨고, 동편으로는 맨하탄 도시선교, 서편으로는 산과 호수가 많은 땅에서의 영성회복과 땅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지경을 확장시켜주셨습니다.
올 해 건물과 땅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잘 믿고 예배 잘 드리는 교회가 되는 틀의 회복과 목회전반에 걸쳐 믿음생활의 행복과 기쁨의 열매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와 교육을 포함한 목회사역 전반에 걸친 질적향상의 도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월 16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성인영어예배는 그동안 ‘길 건너 따로 모이는’ 것으로 여겨졌던 영어권 목회를 후러싱제일교회 목회 중심으로, 그리고 우선되는 사역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중요한 도약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에벤에셀의 하나님 감사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