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애 중 많은 부분이 사람을 만나 먹고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회당에 들어가 서 예배드리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종교심 강한 사람들이 기피하고 멸시하던 사람 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불평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이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긴다’ 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먹으면 안되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그리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더러운 병 걸 린 사람들을 주로 고치셨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살지 못하는 청년, 세리와 창녀, 남자를 6명 바꾸어 살고 있는 여인과 같은 인간들을 만났습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말씀할 때 선한 인물로 등장시키고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에 가야한다 고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을 조금 닮은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부활 하신 주님이 해변가에서 아침을 만들어 놓고 제자들 불러 같이 드신 것처럼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 아합니다. 엊그제 여름학교에서 수고한 선생님들을 위해 박형규 목사는 돼지고기 수육을 저는 바베 큐를 만들었습니다. 수육을 만드는데 몸에 좋은 양념을 가득 넣고 거의 두 시간을 푹 삶아내니 기가 막히게 맛있었습니다. 돼지갈비 바베큐를 할때 고추장과 휩크림 그리고 레몬을 넣어 만드는 비법이 있는데 그날은 재료가 준비가 안되어 돈주고 산 소스를 썼습니다. 고기를 깨끗이 씻고 소금과 후추를 손으로 잘 문질러주고 오븐에 적당한 온도로 익게 한 후 다시 소스 재벌을 하고 굽는 위치를 바꾸고 온도를 높여 겉이 아삭아삭하게 해내는 정성을 들여야 제대로 된 것이 나옵니다. 교사들이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목회스텝회의에서 제가 잔소리를 했습니다. 아무리 음식이 잘 준비되어도 좋은 그릇에 담아 보기좋아야 하고 함께 먹을 샐러드 등이 조화를 이루어내야 하며 식탁을 잘 단장 해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존중과 존귀함을 받도록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음식 만이 아니라 식탁을 통해 감사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야 합니다.
제가 시카고에서 청년들을 무숙자선교에 많이 참여시켰는데 그들에게 많이 했던 말이 존 귀한 이웃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깨달음을 준 경험 때문입니다. 무숙 자 한 사람이 “왜 너희들은 식탁에 앉아 같이 먹지를 않느냐?”고 우리의 억지스런 선한행위를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불우이웃돕기’라든가 ‘불쌍한 사람들’이란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당 당한 인격체로 존중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쌍하다거나 불우하다고 지칭하는 것을 조심합니다.
시카고 무숙자들이 많은 지역에 있는 교회에 ‘dignity table’(존귀한 사람들의 식탁)이란 선교 사역이 있었습니다. 무숙자들을 위한 식사 프로그램인데 테이블에 꽃을 놓고 고급식당에서 하는 것 처럼 교인들이 정장에 나비 넥타이를 하고 웨이터로 섬겼습니다.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교회 목사가 하는 말이 “우리 모두가 존귀함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야” 였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 중요한 문화의 변화가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 마당의 아름다움 만이 아니라 우리가 위치한 동네를 존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제 권사님 한 분이 정성스럽게 잘 키우던 화초를 좋은 화분에 담아 교 회 마당에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방에 있는 비싼 화분에 담은 화초를 교회 마당에 내놨습니다. 교회 마당 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 모임 어떤 식탁도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존귀한 사람들의 식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 야 어른들은 물론 어린 아이들이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문화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