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사회학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른’의 의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진정한 어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목회상담학 개론 ‘상처받는 치유자’ (Wounded Healer)에서 ‘아버지가 없는 세대’(fatherless generation)의 문제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천주교 신부를 의미하는 말로 성직자의 권위가 상실된 시대를 말합니다. ‘권위자를 인정하지 않는 세대’라는 뜻 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다가 제대로 사람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 진정한 남자되기 운동을 이끌었던 로버트 블라이가 ‘어른은 없고 아이들끼리 다투고 있는 사회(The Sibling Society)’라는 책에서 “이 시대 사람들이 곁눈질에 익숙하고 자기 눈 높이 이상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지적합니다. 진정한 어른이 필요한데 어른이란 ‘위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리차드 포스터는 “이 시대의 죄는 시끄러움과 분주함과 피상성이다.”라고 하면서 “깊이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곁눈질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도 많고, 자기 눈높이 이상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은데, 위를 보는 훈련,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어른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어른은 무엇보다 유아적인 자기도취,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연못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관계에서 자기에게 빠져 자기 밖에 모릅니다. 자기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하는 유치한 생각과 마음가짐입니다. 그러니 평생 유치한 아이로 남는 것입니다.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것(simple)은 좋은 것인데 단세포적(simplistic)인 사람들 어렵습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입체가 됩니다. 1차원에서 2,3,4차원의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직선과 단면을 넘어 보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른은 높고 깊고 넓은 세계를 생각하게 하고 이끌어 줍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많으면 시끄럽습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문화와 세상보다 더 크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소리만 높이는 사람들이 많으면 얼마나 시끄럽겠습니까?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약속을 붙잡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함께 가자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어른은 기다림의 미덕을 압니다. 삶도 신앙생활도 성취(achievement)에 빠져있으면 아직 어른이라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정(journey) 자체를 즐기고 감사할 줄 아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옛날 3대, 4대가 함께 살았던 대가족 공동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큰 가마솥으로 밥을 해 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함께 살려면 기다릴 줄 알고 양보할 줄 알며, 함께 사는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은 어른들과 살아오면서 만들어 집니다.
어른은 하나님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줍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말씀해 주는 옛날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꿈을 꿉니다. 제가 자랄 때는 아직도 ‘영웅’이 존중되었던 시대이었습니다. 어른을 어려워하고 존경했습니다. ‘어른’이 말씀하시면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시절에 살았다는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1980년대 뉴욕에 시대의 어른들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어른들 말씀을 들으려고 저는 청년들을 데리고 시카고에서 뉴욕을 자주 왔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시카고를 찾아갔던 당시 20대 청년들 가운데 지금 뉴욕에서 동포사회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도 누구에게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위를 바라다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세계가 크고 놀랍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할 줄 아는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알아 오늘 지금 현재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Being Here and Now)을 감사하고 최고최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 그 분 앞에서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