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주일 예배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어린이와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올해도 어린이들이 주축이 된 ‘주빌라테’(Jubilate)의 찬양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소리를 소신껏 낼 수 있도록 어른들이 뒤에서 받쳐주는 것도 더욱 은혜로웠습니다. 예배를 위해 수고한 모든 손길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이해인 수녀의 대강절 기도입니다. “….길이신 이여 오소서/ 슬픔을 딛고 일어설 희망을 주기 위해 오소서/ 죽음을 딛고 일어설 생명을 주기 위해 오소서/ 당신의 뜻 대신 내 뜻으로 가득 찬/ 당신의 고통 대신 나의 안일함으로 가득 찬/ 당신의 겸손 대신 나의 교만으로 가득 찬/ 마음의 땅을 갈고 닦게 하소서/ ….좀더 부지런하지 못해 쭉정이처럼 살아 온 날들을 용서하시고/ 믿음이 깊지 못해 좋은 열매 맺지 못한 날들을 용서하소서/… 우리의 걸음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가 더욱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고뇌의 잡풀 무성한 이 조그만 약속의 땅에/ 세례의 불을 놓으러 오소서/ 많이 참아서 많이 기뻐하고/ 오랜 투쟁 끝에 오랜 승리를 누리는/ 당신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길이신 이여 오소서/ 아멘.”
“길이신 이여 오소서” 대강절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빕니다. 아기 예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은 기도와 기다림 그리고 기대함의 절기입니다. 감사절 이후부터 연말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질병은 ‘외로움’입니다. 예수님 오시는 계절 외로운 사람들이 예수님 만나 행복하고, 아픈 사람들이 예수님 만나 치유받고, 포기되고 죽어가던 모든 것들이 예수님 만나 소망과 생명으로 다시 일어나는 계절 되기를 빕니다.
박경리 선생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표지 글이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시로 담아낸다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삶의 변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에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참으로 어둡고 아픈 팔레스타인 땅의 사람들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유대 성전은 계속 더럽힘을 당하고 종교지도자들은 부패하고 어둠이 가득찬 역사의 때에 하나님나라 새 역사 시작의 선포가 구유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입니다. 그 예수를 기다리는 이 대강절은 어쩌면 우리가 시인이 되어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쉽게 시를 쓰게 되는 부끄러움을 윤동주 시인이 아파한 것 같이 오늘날 이 시대 우리 예수의 사람들도 아파할 것을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도전인줄 압니다.
요즘 교단의 현실은 말할 것 없고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실존주의적 심리학자 롤러 메이(Rollo May)가 했던 말을 생각해봅니다. “옛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새 것은 오지 않은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하는 용기(Courage To Create)이다.” 대강절은 어떤 어두움과 아픔, 좌절, 죄지음의 현실이 있어도 하나님 사랑과 은혜 믿고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도하는 계절입니다.
오늘 구역회가 있습니다. 한해 교회가 어떻게 주어진 선교적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보고하고 내년도 교회 리더들을 세우는 모임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우리교회가 많은 큰 일들을 이루어내면서도 마음과 생각들이 흩어지지 않고 헛되고 부질없는 일로 바쁘지 않고 꾸준하게 교회의 본질과 본분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감사하기만 합니다. 교회가 하늘을 날아야 합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만 맴도는 일을 잘해서는 안되고 하늘을 날아야 하는데 내년 높은 하늘을 날아갈 교회를 생각하며 기대가 큽니다.
대강절은 기도하고 기다리고 기대하는 계절입니다. 여러분 가정도 교회에도 예수님 때문에 일어날 신비롭고 놀라운 거룩한 변화의 새역사를 소망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