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목사후보생을 심사할 때 다음 세가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첫째는 이론을 목회현장에 연결하는 능력입니다. 이론이 없으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원칙을 모르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이 없으면 뜬 구름만 잡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애매모호(ambiguity)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100% 흑과 백으로 보기에 어려운 복합적이고 다양한 양상을 가지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혜로운 대처능력이 필요합니다. 세번째는 자기 자신을 보고 웃을 줄 아는 자기 객관화의 능력입니다. 어느 유대 랍비가 “자기가 성직자라는 것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성직자가 될 자질이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영어로 ‘ability to laugh at oneself’라고 해서 자기 자신에게 웃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기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쑥스럽고 싱겁게 여겨 혼자 웃을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푼수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목사도 그렇지만 가끔 교회 직분에 있어서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사람들을 보면 씁쓸한 코메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 ‘웃프다’는 말이 있더군요. 웃기는데 슬프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옛날 최불암씨가 심각하게 말하는데 내용적으로 엉뚱한 말 씨리즈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 가운데 “내가 아니면 누가 지구를 지키나?”였습니다.
오래전 예배당 건축을 앞두고 어느 분이 제게 와서 “목사님, 건축위원장을 아무개 장로님이 하셔야지 다른 사람은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기도하고 있었는데 답을 얻었습니다. 예배당 건축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듣고 보니 그분을 건축위원장으로 세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아틀란타 한인교회를 떠날 때 많은 분들이 제가 떠나면 그 교회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떠나와 보니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제 후임자에게 한마디했습니다. “적당히 해. 내가 떠나고 어렵다는 말이 들리고 그대도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를 해야 내가 기분이 좋을텐데 교회가 나 떠나고 잘된다는 말 들으니 너가 밉다” 물론 농담입니다. 저보다 목회 잘하는 후임자가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사람은 떠날 때 잘 떠나야 하고,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저는 누구를 칭찬할 때 ‘appropriate’(적절함, 적당함, 중용)라는 말 적용하기를 좋아합니다. 반대되는 말을 찾는다면 ‘무리함, 억지로함, 적절하지 않음’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입니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사네죽네 할 문제가 가정이나 교회에 별로없습니다. 그런데 무리를 하니까 문제가 커집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적절하고 적당해야 하는데 무리하거나 억지로 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오해를 잘 받는 것 같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적절함과 적당함을 적용하려고 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받았다며 너무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분들에게는 잠잠할 줄 아는 영성도 중요하다 하니 가끔 섭섭해 합니다.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분들에게는 “집안일부터 잘하라”고 해서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나 없으면 교회 누가 지키냐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고민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는 사람 난리치면서 반기지도 않지만, 떠나는 사람 붙잡지 않습니다. 그분의 뜻을 존중할 뿐입니다. 과하게 거룩한 언어 많이 쓰는 분들이 대표기도 하면 마른 기침을 크게 합니다. 찬양도 멘트 많이 하지 말고, 억지로 은혜를 강요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설교도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니기를 고수합니다.
교회 절기 프로그램도 적절하고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평상시 하지 않다가 갑자기 대단히 선한 일 하는 것처럼 난리치지 말것이고, 별것 아닌데 대단한 것처럼 과시하는 것도 삼가해야 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트리도 매년 올렸다 내렸다 애쓰지 말고 동네 섭섭하지 않을 정도만 하라고 했습니다. 진짜 귀한 때는 ‘평상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절함과 적당함의 중심에는 사람의 편리가 아니라 예수님 사랑이 담겨있어야 생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