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제 스승이 “허탕치는 자유를 배워라”고 하셨습니다. 30여년 전 시카고연회에 등록을 하자마자 지금은 모두 80세를 넘기신 이경희목사님과 곽노순목사님을 모시고 호수낚시를 간적이 있었습니다. 이목사님은 바늘 수십개 달린 줄 낚시를 던져 놓으셨고, 나는 가짜 미끼(lure)를 던졌다 끌어당기는 낚시를 했습니다.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고기 건져올리는 재미에 한참 빠져있는데 곽목사님이 저를 부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중국의 강태공은 바늘없는 낚시를 하면서 천하강산을 낚았는데 너는 어찌 먹지도 않을 물고기 잡느라 그리 난리법석을 떠느냐? 허탕치는 자유를 배워라”
요즘 부쩍 홍근수 목사님과 곽노순 목사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홍목사님은 23살 감리교목사인 저를 장로교회 부목사로 삼으시고, 목사 만드시느라 혼심을 다하셨습니다. 열심히 가르치는데도 따르지 못할 때 주로 하신 말씀이 “김목사를 보면 앞으로 감리교 미래가 암담하다”였습니다. 주일 새벽 5시 가끔 전화를 하셔서 “설교본문이 바뀌었다”하시면, 바로 교회 사무실로 달려가 주보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카피머신이 나오지 않은 때라 기름종이에 수동식 타자를 쳐서 잉크를 밀어넣는 미미오기계를 돌려야 했는데 급하게 하다보니 사이가 벌어져서 잉크가 번지고, 그러면 다시 주보를 해야 하니 아무도 없는 교회사무실에 앉아 엉엉 울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1년 지난 어느날 홍목사님이 설교가 끝나자 저를 앞에 세우시더니 “여러분, 앞으로 일년간 김정호 목사가 보스톤 한인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저는 안식년 떠납니다”하시며 자신이 입었던 가운을 제게 입혀주셨습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기라성 같은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있는 대 보스톤한인교회 임시담임을 일년간 했습니다. 그러다 시카고연회 감리사님이 제가 장로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을 연장해 주지 않고, 시카고로 불러 보스톤을 떠나야 했습니다. 떠나는 날 홍목사님이 “목사에게 필요한 것은 인격과 실력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인격이 우선이어야 한다” 하셨습니다.
요즘 “지금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어쩌면 모든 세대가 변하는 세상이 힘들때 하는 말일 것입니다. 각 세대가 살아가는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이 서로 맺는 관계를 함부로 하는 일들을 자주 보면서 당황스러울 때가 적지않습니다. 그런가하면 최백호가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면서 구성지게 외쳐 재끼는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를 요즘 마음속으로 부를때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이 아쉽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이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목사들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집단화 되어가는 교단과 이익관계가 우선되는 경우를 보게 되면서 씁쓸하고 걱정되기도 합니다.
옛날 일제 강점기, 종로 건달 김두환에 대한 연속극 중에 이북파 이성순(시라소니)이 건달 세계를 떠나며 “재미없어. 내레 재미없어”하는 대사가 기억납니다. 원래 조선의 깡패들은 조선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대의명분이 중요했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독재정권 하수인 역할을 하는 정치깡패 양아치 세계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가 한 말입니다.
곽목사님이 제게 “젊은놈이 어찌 유리와 불리를 고민하느냐? 진리만 생각해라”하신 적이 있습니다. 홍목사님 통일운동하다 한국에서 감옥살이 하실 때 면회가서 “목사님은 왜 꼭 어려운 길을 가셔야 하는건가요?” 울음섞인 소리를 하는 저에게 “너는 미국에서 목회 잘해라. 나는 하나님이 이 길을 주셨다” 하셨습니다. 홍목사님은 서울법대, 그리고 곽목사님 연대 문리대를 졸업하시고는 같이 한신대에 입학하신 동기중 가장 친한 동무였습니다. 신학적으로 한 분은 기독교사회주의, 그리고 한 분은 철저한 반공주의 였습니다. 제 나이 20대초반, 두 어른은 40대 중반, 그 분들이 제게는 하늘처럼 어렵고 무서운 어른들이셨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고,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요즘 부쩍 선배 스승들이 많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