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게 “목사님은 영생을 믿으세요?”라고 질문합니다. 지식과 경험으로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내 생각과 경험을 근거로 하기보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시니 믿는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믿고 살다보면 믿음이 삶의 현실이 됩니다. 유대 교육의 가장 근본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서가 아닙니다. 창세기 시작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입니다. 이미 전제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지,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직면한 도전이 있다면 보수신앙을 이기적인 개인주의화하는 문제와 진보 신앙은 복음을 세속화시키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보수가 세상에서 도피하여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려고 한다거나, 진보가 교회를 성육신의 신비함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없는 세속화된 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면 막아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에서는 선포의 권위가, 성도들은 고백의 겸손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며칠 전 최인호가 쓴 ‘유림’이라는 소설에서 조선시대 조광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는 뜻의 ‘다기망양’이란 단어 설명을 읽고 도움을 얻었습니다. 우리 교단이 직면한 문제를 보아도 자기 생각이 맞고 신학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정작 돌봐야 할 양은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양을 풀밭으로 이끄는 길이 정치의 근원이므로 이 길은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정쟁과 편가르기에 의해서 정치의 길은 수많은 갈림길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이 수많은 갈림길 때문에 막상 우리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양은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최인호, ‘유림’, 289쪽)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하시면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하셨습니다. 엊그제 민주당 후보토론을 보면서도 가까운 곳에서 낮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는 그리고 단순명료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토론과 연설의 탁월함이 바닥의 현실 경험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군자의 길은 먼데로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은 데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바와 같느니라”(공자, ‘중용’) 우리 교단의 문제도 바닥 현장의 목회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양을 찾는 과제를 정치이데올로기 논쟁화 함으로 여러 갈래길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철학을 전공하고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 한분이 제게 “목사님이 생각하는 이 시대 거대담론(the grand narrative)이 무엇입니까?” 묻기에 “요한복음 3:16절!”이라 했더니 “그런거 말고요. 시대를 읽어내는 그 무엇이요?”합니다. 그래서 “내게 거대담론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영생을 얻게하심 그 말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그 사랑 십자가 구원의 은혜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 마지막 장면에 보면, 현 프란체스코 교황과 전 베네딕트 교황이 아르헨티나 독일 월드컵 결승을 보면서 서로 자기 나라를 응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영화의 시작은 신학적 반대 입장에 섰던 두 사람이 치열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루를 지내면서 토론하다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귀한 존재임을 알게됩니다. 결국 해방신학적 입장에 서있던 현 교황이 보수 교리를 지키려던 전 교황의 고민과 아픔을 끌어안고 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됩니다. 가톨릭 교회의 큰 위기를 두 늙은이들이 대화를 하다가 노래를 하고 춤을 추더니 월드컵 축구경기를 함께 보면서 해결이 되고 치유가 되는 것을 보면서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연합한 세력들을 보면 의로움이 아니라 이로움이 중요했던 헤롯왕과 빌라도 총독, 교조주의 성직집단 사두개파 그리고 잘못된 열심의 바리새인들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보아야 합니다. 모두 혼자만 잘나서 같이 밥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 할 줄 모르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