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정호

어제 낮 대학생 때 좋아하던 그룹 Kansas가 부른 ‘Dust In the Wind’(바람에 나는 먼지)를 계속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같다는 체념적인 노래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생 최고최선을 살아야 하겠다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삶의 목마름을 동시에 일으키는 신비한 노래입니다. 침묵을 지켜야 하는 날이지만 저는 왠지 옛 노래가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운 옛 노래를 지나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예수님 부활하심을 축하하는 찬송이 퍼져 나왔습니다.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저 천사 기쁜 노래가 온 땅에 퍼지네 내 혼아 깨어서 주 찬송하여라 온 백성 죄를 속하신 만 왕의 왕 일세”(Crown Him with many crowns/The Lamb upon His throne/ … Awake, my soul, and sing/ Of Him who died for thee,/ And hail Him as thy matchless King/Through all eternity.)

인생이 바람에 나는 먼지와 같다는 노래가 중늙은이가 되어 가는 나를 위로해 준다면 ‘내 혼아 깨어서 주 찬송하여라’ 찬송에는 언제인가 내 인생에 주어질 노년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계속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봄의 기쁨과 감격이 담겨있습니다.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그 손과 몸의 상처가 영광 중 빛나네/ 하늘의 천사도 그 영광보고서/고난의 신비 알고자 늘 흠모하도다” 어제 하루 종일 부활주일 설교를 생각하면서 이 찬송을 혼자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저 혼자 성가대도 대신하고 내 마음속에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해서 부활하신우리 주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모든 주일예배는 부활하신 주님때문에 죽어가는 죽어졌던 모든 것들이 살아나는 날입니다. 사도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말씀도 명령입니다.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주간 인생조건에 의해서 예배 드리는 우리의 마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때문에 인생현실이 결정되어져야 합니다. 감사와 기쁨과 사랑과 은혜와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로 채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어느 교인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어려운 상황을 말하면서 자기 마음에 필요한 글이라면서 ‘밧줄’이란 제목의 짧은 글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오직 희망만을 말해야 할 때입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절망이라는 암벽을 어떻게든 올라야 합니다. 그것을 오르는 데 제가 여러분의 밧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사랑하고 나누며, 아끼고 살아도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엄홍길의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중에서)

어제 새벽 여성중창단이 하얀 옷을 입고 특송을 하기에 제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들이 예수님 죽어 계신 무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죽었던 분이 살아나시겠습니다.”라고 농담을 하려다가 참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 말씀이 “여성중창단도 그동안 활동을 안했는데 이제 부활했나 보네요.”하십니다. 저도 성금요일 한영합동 기도회 때 그렇게 모든 세대가 모든 순서 조화를 이루어 짜임새 있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그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소예배실에는 어린이들이 예배에 참여하고 세족식을 했다는데 아이들도 조용히 잘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교회가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사와 기쁨은 더 크기만 한 것 같습니다.

예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모든 죽은 것들이 예수님 다시 사심으로 그분과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 부활의 기적이 여러분 가정과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오늘 현실이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