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정호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보다 나를 지도해 주셨던 스승들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에게 ‘스승’이 되어 주신 어른들 세분 가운데 두분은 이미 하나님 품으로 가셨고 한분은 벌써 오랜전 나에게 하산 명령을 내리셨고 나를 만나주지 않으셔서 한번도 뵐수없었습니다. 부목사에서 쫒겨난 것입니다. 30년도 훨씬 넘은 세월인데 요즘도 나를 내치신 스승의 말씀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옛날 시카고에서 대학 캠퍼스 목회를 시작할 때 ‘대학목회가 무엇이냐’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상품과 기계를 모방해가는 인간에게 태초부터 새겨져 있는 얼굴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예술이고, 이익과 효율만을 가치로 여기는 인간들 틈에서 가슴과 가슴을 이어 놓는 농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그려놓은 그림만을 생산하는 교육, 삶에 대한 물음을 물을 수 없게 하는 교육, 낭만과 정열과 실수의 여지를 샌드페이퍼로 문질러버리는 교육, 결코 손해 보지않는 인간, 정신이 멀쩡하기만 한 인간, 맛과 멋이 결여된 메마르고 닫혀진 인간들 만을 찍어내는 교육 이런 우물 없는 마당과 불 없는 화로와 같은 교육현실에 대하여 ‘대학목회’는 젊은 시절에 영원으로 화한 예수의 복음으로 우물물을 파고 화롯불을 담는 노력 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작은 가르침 ‘소학’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가르침이라 한다면 ‘대학’, 큰 가르침은 삶과 영혼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손짓하고 일깨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나에게 “목회는 대어를 잡는 낙시다. 그물로 아무것이나 쓸어담으려는 목회하지마라.”하셨습니다. 내딴에는 열심히 목회를 하지만 목사님을 찾아가면 항상 야단만 맞았습니다. “큰 가르침은 바보스러움과 미침을 얻는 것인데 너는 왜 그리 잘난 사람이 되려 하느냐.” 젊은 놈이 진리에만 관심 가지지 왜 불리와 유리를 생각하느냐?”

한번은 낙시를 모시고 갔는데 분주하게 고기를 많이 잡으려고 애쓰는 나에게 “고기를 그리 많이 잡아서 뭐하려 하느냐? 옛날 강태공은 바늘없는 낙시를 하면서 산과 강과 천하를 낚았는데 너는 물고기 몇마리 잡느라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을 하나도 가슴에 담지 못하는 것 같다. 큰 낙시를 해라.”하셨습니다.

몇 년 전 후배 목사가 나를 부목사에서 내치신 목사님을 한국에 가서 찾아뵙고 내 이야기를 했더니 “그 놈 교회 크게 하지?”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후배가 “네. 그런데 그래도 좋은 목사님이십니다.”라고 했더니 아무말 안하시더라 하면서 “목사님, 이제쯤이면 곽목사님 한번 찾아 뵈세요. 곽목사님도 목사님 보고 싶으실꺼예요.”합니다. 나를 가르치신 스승들은 내가 큰 교회 목회하는 것을 그리 달갑게 여겨하지 않으셨습니다. 30년도 넘은 시절 하신 말씀이지만 “너는 공부는 별로 하지 않고 뭘 그리 많이 교인들에게 가르치려하느냐?” 책망하신 것이 아직도 내 귀에서 맴돕니다.

참 신기합니다. 쫒겨난 신세이지만 나를 내치신 스승의 가르침들이 소록 소록 생각이 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고맙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