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뉴욕 연회 감독이 주관하는 줌미팅이 있었습니다. 감독은 세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우리 교단에 뿌리 박힌 구조적 인종차별을 없애고 세상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쓰임 받을 것인가?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견디고 이겨낼 것인가? 교단이 동성애자 목사안수 문제로 분리의 위기에 있는데 어떻게 서로 상처주지 않고 ‘은혜로운 결별’(amicable separation)을 준비할 것인가? 그런데 대화 중 여성 목회자 한분이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한인목사들과 교회 안에 있는 여성차별문제도 다루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감독께서는 특별히 미국교회에서 목회하는 한인목회자들이 인종차별적 현실에서 목회하는 수고와 헌신에 대해 이해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했습니다.
두시간에 이르는 줌미팅으로 피곤함이 컷지만 참으로 다양한 목회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들에 대해 내 개인의 경험과 이해의 틀을 가지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이 왔고, 모두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군대도 나오고 다 커서 미국에 온 분들도 많은데 시골 백인교회 목회를 하고 도시 다인종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새삼 존경스러웠습니다. 여성목회자들은 동양 여성에 대한 가중된 여성차별의 현실에서 목회를 하니 더욱 그리했습니다. 사실 저는 미국교회 목회가 우리 한인 이민 목회보다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감이 강했는데, 그날 회의를 통해 자기중심적인 판단의 어리석음을 반성했습니다.
회의 마지막에 저도 한마디 했습니다. “인종차별, 여성차별, 교단분리 문제 이 모든 것 서로 반대편 적대시하는 전제를 가지고는 문제를 풀어내기 어렵다. 문제해결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우리 모두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신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한발짝 더 나아가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제가 그런 발언을 한 이유는 너무 많은 모임이 문제 제기는 잘하는데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제시를 하지 못하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실을 친구삼자’(Making Friends with Actionable Facts)는 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면 스트레스는 풀릴 수 있어도 발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은 말할 것 없고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문제를 아무리 많이 이야기해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를 예언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그의 예언은 ‘부드러운 예언’(soft prophecy)이라 표현하면서 세상이나 사람의 문제에 대해 소리지르고 정죄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내용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꾼 영향력이 있었다고 제시합니다. 그래서 숲속의 맹수도 그를 만나면 온순해졌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면 그런 세상을 나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삶의 현장과 현실에서 이루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과 병자들과 먹고 마시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치유하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고 이루어 내셨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람이 살아나고 고침받고 기쁜소식이 이루어지는 그것을 보는 자는 복되다 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 사람들과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세상을 두렵게하고 파괴하고 있지만, 하나님 살아 역사하심이 엄연하기에 우리의 눈과 마음을 활짝 열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시는 사건을 믿음으로 눈과 마음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여기에서 내게 일어나는 그리스도 구원의 역사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