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It’s OK not to be OK)라는 연속극이 넷플렉스에 나옵니다. 어린시절 큰 불행과 상처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서 치유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입니다. 온통 저주와 원망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 주는 여자 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이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감싸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 스스로 자기를 보듬고 토닥거려주며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받은 치유자’를 말합니다. 상처받아 아픈 것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능력이 있고 그래서 하나님은 상처받은 사람이 다른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하는 사명을 가지고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 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물에 빠져 고통 당하는 것을 이해할 줄 아는 것입니다. 옛날 영어 사도신경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지옥 내려갔다 올라오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 되심은 우리의 지옥을 아시고 우리의 죽음의 현실까지도 그분은 다 경험하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를 보다가 제가 놀란 것이 있습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쇼핑몰에 갔다가 어린시절의 악몽이 살아나 두려움에 빠져 소리를 지르는데, 사람들이 그냥 바라보거나 아니면 손가락질 하고 어떤 사람은 함부로 손찌검을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래도 된다 여기고 그러는 것이 상식이라고 여기는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결국 ‘괜찮지 않은’ 병에 시달리는 다른 사람이 자폐증 걸린 사람에게 손찌검하는 인간의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려 못되고 못난 행동을 멈추게 합니다. 물론 그로인해 그 사람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지만 결국 상처받은 아픈 사람들이 서로를 감싸주고 치유를 돕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는 아픈 사람을 찾으러 왔다” 하셨습니다. 죄가 없다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찾으러 왔다고도 하셨습니다. 회당에 와서 나는 아무 죄가 없다는 의인의 기도가 아니라 죄가 많아서 예배드릴 자격이 없다고 통회하는 죄인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이번 주 리차드 로어(Richard Rohr)가 쓴 ‘Breathing Under Water’(물 속에서 숨쉬기)를 읽었는데 알콜중독 치유 프로그램인 ’12 스텝’을 영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글입니다. 80년대 초반 보스톤 한인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봤는데 화요일과 목요일에 알콜중독자 치유(AA: Alcoholics Anonymous) 모임이 아주 잘 모였습니다. 우리가 미국교회와 건물을 함께 사용했는데 주일날 미국 교회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 보다 알콜중독 치유모임에 훨씬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치유모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자기가 알콜중독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자기 혼자 힘으로는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치유받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리차드 로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치유하셨는데, 오늘날 교회들은 치유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예수님 말씀에 따라 살려는 것에는 소홀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 주님은 성육신(Incarnation) 하신 그리스도라는 그 믿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들이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괜찮치 않은’ 아픔과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나요?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이 ‘괜찮치 않다’고 규정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과 병자와 버림받은 사람들과 먹고 마심으로 바리새인들에게 비난 받고 결국에 십자가 죽임 당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돌아가기 위해 땅으로 더 내려와서 지극히 작은 자들, 잃어버린 삶을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뒤지고 버려진 사람들과 만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본 환상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괜찮다고 했는데,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그 사랑과 은혜가 오늘 우리를 살리고 치유하는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