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루는 해가 아니다. 올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감사하는 해다.”(This is not the year to get everything you want. This is the year to appreciate everything you have.)라는 글을 봤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더 보탤 필요가 없는 현실에서 감사주일을 맞이합니다.
엊그제 보니 부엌에 실하게 잘 익은 무가 한보따리 있습니다. 교회 농장에서 수확한 열매인데 장로님들이 가장 좋은 것들을 골라서 주셨다고 합니다. 교인들께 조금씩이라도 나누려고 어제는 아침부터 여선교회에서 손질을 하더군요. 올해 무농사 과정을 잘 아는 분이 깔깔 웃으며 “이거 마트에 가서 사면 몇불되는 것도 아닌데, 그 먼곳에 왔다갔다 하면서 씨뿌리고 물주고 얼을까 덮어주고 그 고생을 했는데 왜 이렇게 재미나고 신나는 걸까요?”합니다. 후러싱, 교회 주변 동네를 돌아보면 집 앞에 꽃을 심고 조경을 하기보다는 채소를 땅과 하늘까지 올려 텃밭을 이룹니다. 처음에 여기에 와서 그 환경이 기가 막혔습니다. 집값은 천하 비싼 동네인데 동네는 판잣집 동네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해 지나고 나니까 저도 교회 앞마당 뒷마당 심을 틈만 보이면 나무 박스 텃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올해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는 꽃을 심었던 사무실 앞 나무 박스 4개에 각종 채소를 심었습니다. 거의 실패를 했지만 어쩌다 먹을만한 것이 하나 올라오면 횡재나 한 기분이었고 하루 하루 기대감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옛날 넬슨 만델라가 근 30년 감옥에 갖혀있다가 나오면서 많이 아쉬워 했던 것이 감옥 마당 텃밭에 막 자라기 시작한 토마도 익는 것을 보지못하는 것이라고 자서전에 썼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람은 땅에서 나온 존재이기에 흙을 만지고 땅의 소산을 보는 행복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땅으로 내려 오셔서 땅의 사람들과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에서 히브리민족을 이루는 기본 집단이 ‘암하레츠’(땅의 사람들) 였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 ‘지극히 작은자들’인데 그들에게 하는것이 예수님 자신에게 하는것과 매한가지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땅의 사람들과 함께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교회일 것입니다.
며칠 전 아스토리아 교회 전성도 장로님이 하나님 부름을 받으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부인 권사님이 혹시 제가 어떤 순서라도 맡아줄 수 없는지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장로님 따님이 제가 섬겼던 교회 권사님이셔서 가끔 뵈었었는데 항상 오랜 친구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뉴욕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수요예배에 내외분이 오셨기에 인사를 드렸더니 장로님이 저를 못 알아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권사님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저는 그때 왜 권사님이 육신이 약해지셔서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는 장로님을 예배에 모시고 오셨을까 의아했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을 하면서 잠시 스쳐가는 만남일지라도 남모르는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소중히 여기는 만남을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교회는 무엇하는 곳일까요? 며칠 전 덴버의 이선영 목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목사님 감사주일이지만 주일 지나면 마음이 많이 허전하시겠어요?”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고 전화를 끊고 보니 어머니 돌아가신 날을 이목사님이 기억하고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자상한 목회를 못했다는 반성과 동시에 많이 감사했습니다.
고은의 시 중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올해 한해 였습니다. 11월이 깊어지면서 코로나 확산의 두려움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이루기 보다는 버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땅바닥으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로 인해 앞으로 그리고 높이 빨리 달려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땅바닥 떨어지는 경험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회심하는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나름대로의 다메섹 경험을 하나님이 주셨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광야에서 감사하는 사람들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내 선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 가시도 감사…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