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순 목사님이 쓰신 ‘그대 삶의 먼동이 트는 날’을 보면 편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빈 공간들이 순서없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처음에는 종이를 낭비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빈 공간은 그냥 비어있지만 또 어떤 공간에는 한마디씩 적혀있습니다. “백지는 빈 칸이지”로 시작되면서 “백지는 비어 있는 것만은 아니지”, “빈 칸은 그득하네”에서 “비어 있는 것은 넘쳐 흐르네”로 끝납니다. 저는 곽목사님이 사람의 실수로 만들어진 빈 칸에 그리 쓰시고는 그냥 하라고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빈 공간’이 많습니다. 마음과 생각도 비어지게 되고 관계도 그렇습니다. 예배당도 사람들 먹고 사는 삶의 자리도 텅텅 비어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병실은 가득차고 근심과 걱정은 차고 넘칩니다. 삶의 자원이 넉넉한 사람들은 비어있는 시공을 잘 활용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배고픔과 좌절로 채워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비어있는 것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창조의 시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허무가 의미로, 혼돈이 조화로, 어둠이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대강절 아기 예수 오시는 이 계절, 만삭이 된 여인이 머리 둘 곳 없을 정도로 여관이 꽉 채워져있으니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셨습니다. 사람들 모두 자기 것으로 가득 차 하나님 들어 올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 방에 오래전 김지하 선생님이 주고 간 ‘빈터의 바람’이란 글과 함께 난초가 그려져 있는 액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주시면서 “목사님 계신 곳이 장일순 선생님이 계셨던 강원도 원주가 되기를 빕니다”하셨습니다. 빈터의 바람입니다. 어쩌면 코로나 사태로 비어있는 우리네 삶의 시공은 예수님 영접하고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교회도 비어있는 것은 비어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예비하심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것으로 채워졌던 것 비어져야 성령의 바람이 불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곽목사님이 개척하신 샤론교회는 미국교회를 빌려 오후 1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에어컨이 없었는데 아무리 더운 날도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 어디서인지 시원한 봄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목사님의 목회는 다른 것 안하시고 일주일 내내 하루 10시간씩 책만 읽으셨습니다. 심방 이야기하면 “이놈아, 내가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어도 교인들 다 살피고 있다. 사람의 몸이 분주하다고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 아니다”하셨습니다. 제가 대학생 목회한다고 여기저기 여러 캠퍼스 다니면 “너는 배운 것이 별로 없으면서 뭘 그리 많이 가르치러 하느냐?”하셨고, 제 열쇠 꾸러미를 보시고는 “깨달음을 얻을수록 열쇠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너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구나” 하셨습니다. 어느날 교인들이 좀 늘어나는 것 같은데 부르시더니 신문사에 광고를 내라 하십니다. 여쭈었더니 “더 이상 손님 받지 않는다고 광고를 내라”하셨습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70명이 넘어가니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님의 그런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큰 마음 먹고 질문 몇 가지 드렸는데 바로 다음 주일 하산 명령을 받았습니다. 쫒겨난 것입니다. 쫒겨난지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 어른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시절 지금도 가끔 돌이켜 보면 내 인생 참으로 값진 시간들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비어있는 현실을 뭔가로 채워보려고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강절을 지내면서 지금은 인간의 발버둥으로 애쓸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 있도록 빈 공간을 잘 정돈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 계절 빈 터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가난한 심령에 예수님 오시고, 우리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