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고난과 죽음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쉽게 설교한 것 반성을 합니다. 손에 가시 하나 박혀도 아픈데 못이 손과 발을 뚫고 나무에 박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사람의 못된 말 한마디 눈빛 하나도 오래 상처가 되고 아픔으로 맴도는데, 침 뱉으며 조롱하던 모든 말과 함성들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을지, 제자들의 배신 그리고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이 돌아서서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살기등등이 얼마나 큰 아픔이셨을지 생각하니 고난에 대한 설교 쉽게 한 것 회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울부 짖으셨지만 결국 “다 이루었다”하셨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말씀하시고 숨지셨습니다. 저는 정말 예수님 잘 모르면서 너무 아는 척을 했다는 반성과 회개를 합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이 진정 어떤 것인지 예수님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없이 나의 구원자, 인류의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으로 쉽게 설교의 주제로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예수의 죽음’(이현주)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뛰어내려보라는/ 견디기 힘든 조롱을 받으면서/ 무력하게 매달려 죽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힘이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앙갚음 하지 못하는 못난이들에게/ “예수도 그렇게 당했지.”/ 한 마디 하면, 그게 위로가 된답니다./ 그날, 끝내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매달려 죽으신 주님, 진정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힘의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헬라 철학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힘도 없고 억울함 당하면서도 호소할 길이 없는 세상의 작은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매달려 죽으신 주님, 진정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년 넘게 억지로라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얻은 것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 숨 고르고 한 발짝 물러나고,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내 삶에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나와 너 인간의 짓거리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이 무엇일지 깊이 묵상해 봅니다. 혈압이 내려오고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실수가 적어집니다. 사건과 사물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이 늘어납니다. 얼마 전에도 무슨 일이 있어서 큰 걱정에 빠진 사람에게 글 하나를 보냈습니다. “One of the secrets of life is make stepping stones out of stumbling blocks.”(인생 비밀 가운데 하나는 장애물을 디딤돌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은 나를 걱정해서 하늘이 꺼지는 한숨을 쉰 것인데, 왠지 정작 나 자신은 덤덤하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 넘어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보고싶기 때문입니다.

목회 초기 선배들이 주신 말씀 가운데 하나가 “사람 믿지 말아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하나님만 믿음의 대상이다”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사람 믿는 것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동안 사람 쉽게 믿고 그냥 좋은 것만 생각하고 살아온 것 후회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큐티 나눔에서 권사님 한 분이 “자격이 없는 저를 목사님이 택해주셔서…” 그러기에 제가 그랬습니다. “자격이 없는 것으로 말하면 내가 으뜸일 것입니다”저는 언제나 나같은 자격없는 인간을 목사로 인정해 주는 교인들이 고맙고 주일이면 나같은 못난 인간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들어주는 교인들이 눈물나도록 고맙기만 합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성금요일 십자가상 일곱말씀 기도회도 있고 예수님 쓰러지신 14자리 현대판 고난의 현장을 둘러보는 시간도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투쟁도 이 시대 예수님 고난 현장입니다. 아시안 혐오범죄로 인한 고난의 자리도 예수님 계시는 곳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모든 무너지고 아픈 현실 예수님이 오셔서 치유하시고 회복 시키실 고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모든 하나님 자녀들의 아픔과 고난 우리 주님 함께하시는 고난의 현장입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예수님 십자가 고난은 물론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억울함을 쉽게 생각했던 일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어떤 못남 모자람 죄가 있어도 예수님 십자가 우리의 죄 구속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죽은 후 삼일 지난 새벽, 죽음 권세 이기시고 주님은 부활 하십니다. 오는 한 주간 예수님 십자가 고난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체험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