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 무덤이 비었다는 것과 갈릴리로 부활 주님이 가시니 거기에서 그분을 만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것은 더 이상 무덤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복음입니다. 우리 인생 생명으로 나오는 길을 가로막은 큰 돌을 하나님이 굴려 열으셨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로 가셨다는 것은 다시 또 하나님 나라의 선포, 병자를 치유 그리고 세상에서 악한 영을 몰아내는 선교의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의 권세나 두려움이 우리를 좌지우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 그리고 영원한 세계를 향한 소망 가운데 우리는 살게 된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나 자신의 한계를 정직히 들여다 보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들을 통해 십자가 예수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무덤의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활 새벽을 증거하는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코로나의 지난 1년, 나 자신의 삶과 목회를 돌아보는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집요하게 집중적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평생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가기만 했지 가만히 있어보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주어진 모든 것들이 너무 커서 감사가 넘치기만 합니다. 동시에 돌이켜 볼 때 후회와 반성 그리고 회개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앞으로 더욱 제대로 살아 봐야겠다는 각오와 결단이 섭니다.
영어로 된 사도신경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사’(descended into hell) 또는 ‘죽은 자들에게 내려가사’(descended into the dead)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느 번역에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왜 주님이 그러셨을까요? 우리를 지옥의 영원한 괴로움의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올라가도록 하신다고 해석이 많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지옥’ 현실, 굳게 닫힌 무덤의 현실에 더 이상 갖혀서 살지 않도록 주님이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자 이겨내야 하는 지옥의 현실이 있기에 부활 주님이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리라” 하신 말씀이 진정 복음, 큰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줍니다. 이제 세상을 미움, 좌절, 갈등, 죽음의 눈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 소망, 평화 그리고 생명의 눈과 마음으로 보도록 하십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새로운 믿음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물론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다시 사랑과 생명의 눈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시고 제일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한다고 바쁘지 않고 실망하고 좌절하여 옛 생활로 돌아간 제자들 다시 만나셔서 사랑과 소명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 생각하며 깨달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일에도 긴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장된 표현이나 남을 감동시키려는 미사여구들이 없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밥먹자” “너희 가운데 평화를…” 단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40년 말로 밥 먹고 살아온 세월이 길었는데 왜 그리 말이 길었고 설득하려고 설명이 많았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과 조반을 나누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확신을 주고 평화를 나누는 일에 쓰임 받고 싶습니다. 30여년전 나에게 이제 하산하라고 내치신 스승목사님이 이렇게 쓰셨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짧은 인생 동분 서주하다, 어느날 사람 아닌 몸으로 물 가에 나타나 생선을 구으며 제자들을 기다리는 예수의 푸름을 보라. 법정에 선 예수의 고요함을 보라. 형틀에 달려 고통당하면서도 깨어 있는 그의 환함을 얻으라. 겉치레를 모르는 예수를 보라.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들에 핀 꽃들을 좀 보라는 그의 시각을 얻으라…. 내가 패배하고 절망하는 순간에 부르면 지금도 보이지 않는 손길을 뻗어 응대해 오시니 신비스런 님이요 주라 할까? … 그가 열어 놓은 길을 오늘 가세.”(151쪽, ‘그대 삶의 먼동이 트는 날, 곽노순)
그동안의 목회를 돌이켜 보면 도대체 왜 그래야 했는지 언제부터인지 갈릴리에 계신 부활 주님 만나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주변도 혹시 뭐가 괜찮은 것이 있을지 기웃거렸던 날들이 길었습니다. 재미도 없고 보람도 의미도 없었는데 예루살렘에 대한 기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나도 예루살렘 중심부에 들어가 뭔가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확인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람이 이루려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지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무덤도 나름대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2021년 오늘 부활의 아침이 너무 귀하기만 합니다.
이제 이 부활의 아침 예수님 때문에 모든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시작하셨던 그 목회와 선교에 쓰임 받는 제자의 사명에 집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