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양을 늑대 가운데 보내는 것 같으니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 10:16) 하셨습니다. 늑대는 예수님 당시 종교적으로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이고 정치적으로는 로마총독과 헤롯왕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죽이려고 야합한 타락한 교권주의와 독선적 교조주의, 그리고 식민주의와 반민족세력이 권력을 잡은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만연하는 가치관은 오늘날 교회에도 팽배한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부의 축적을 이루려는 물질만능주의, 정의와 평화를 파괴하는 독재와 군사문화, 백인 민족주의에 이용당하는 무지몽매 신앙, 악한 권력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적 성직자 교권세력, 예수의 사랑과 생명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진 파괴적인 교조주의 평신도들…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파송받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지혜가 무엇일까요?
교회에서 오늘날 늑대와 양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교회를 죽이는 목사들과 목사 잡는 일 잘하는 교인들이 늑대일 것입니다. 어느 분이 ‘교회에서 지도자가 지혜롭게 잘 다루어야 할 일곱가지 모습의 어려운 사람’이라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1. 도마같이 늘 의심하는 사람 2. 유다같이 자기 뜻대로 안되면 배신하는 사람 3. 압살롬같이 기회를 주면 반역하는 사람 4. 고라같이 영적권위에 도전하는 사람 5. 함과 같이 지도자의 부끄러움을 들쳐내고 소문내는 사람 6. 게하지처럼 뒤로 돈을 챙기는 사람 7. 디오드레베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데 뒤에서 악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 목회스텝 회의에서 “목회 열심히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목사가 예수로 행복해야 합니다”라 했습니다. 그래야 교인들이 예수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사역자 3명이 담임목사로 파송 나갑니다. 목사가 예수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없거나 행복하지 않으면서 목회를 잘하려고 하면 그런 교회 사탄마귀가 만만하게 여깁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부터 떼어 놓으려는 사탄의 역사가 맹렬하고 행복을 방해하는 일들이 많으니까 예수로 행복함을 위한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제 기막힌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부모들이 목사 아이들하고 놀지 말라고 하고 목사가 기피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혐오집단이 되었구요. 그래서 제가 그것이 말이냐 방구냐 그랬더니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이냐 아니냐 여부를 떠나 이런 문제 해결하는 길은 단 하나입니다. 예수로 행복한 교인들이 세상을 행복한 동네로 만드는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살리고 땅에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키고 세우는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행복을 살아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는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요즘 목요일이면 비전센타에서 ‘Blessing Store’를 통해 서로돕기 나눔을 하는데, 봉사하는 분들도 보람 있어 하시고 동네 사람들도 재미나 하는 것 같습니다. $1짜리 팔아서 몇 백불 된다는 것, 엄청난 헌신이 아니고는 어렵습니다. 가능한 것은 오직 헌신하는 분들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는 제가 비전센타 철문을 열려고 하는데, 노인 한 분이 숨을 쉬느라고 철문을 붙잡고 계셨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가 철문을 열면서 “여기 붙잡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숨 돌리세요” 했더니 “여기 뭐하는 곳 이예요?” 하십니다. 설명을 해드렸더니 자기 집에 있는 것 가지고 와도 되냐 하셔서 그리하시면 고맙다 했더니 행복해 하는 모습이셨습니다. 나눔과 섬김에 담겨있는 행복만큼 큰 것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뒹구는 세상입니다.(이사야 11:6) 죽이고 미워하고 원수 만드는 일에 익숙하고 빠른 세상을 바꾸시려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마태 5:43-48) 명령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말씀 순종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