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미국 독립기념일입니다. 영국 청교도들이 국교화된 교회의 억압에서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지만 그들은 영국의 식민지 백성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치르고 1776년에서야 독립한 것입니다. 독립은 ‘자유와 해방’, 교회로서는 ‘신앙의 자유’를 생명을 걸고 지킨 것입니다.
사람이 억눌린다는 것 참 어렵습니다. 누구라도 억울하게 하면 안됩니다. 요즘 교회에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대로 된 사실을 확인도 하지않고 편을 갈라 여론재판을 하는 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오해가 있으면 풀고, 관계 치유와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사랑으로 하나되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문제를 악화시키는 일에 바쁘고 열심인 나쁜 문화는 빨리 없애야 합니다.
성경에서 구약은 노예 역사를 살아온 억눌린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 만나고 은혜와 자유 해방 축복을 살아간 기록입니다. 신약은 죄에 억눌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의 증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생명과 사랑의 법을 지키는 사명을 가지고, 삶의 그 어떤 것도 은혜와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 목회대강령(누가 4:18-19)이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 억눌린 자 자유, 눈 먼자 눈이 열리고 하나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예수 희년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이런저런 억울함과 억눌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이 대표적이고 권력 가진 사람들이 힘을 악용할 때 그렇고 많은 경우는 못나고 못된 사람들의 언행으로 인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할 때 “이 말이 참말인가? 친절한 말인가? 필요한 말인가?” 영국 속담의 세가지 황금문을 지나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하면 그 잘못에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능하면 사람을 살리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방법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론몰이 인민재판식으로 사람 잡는 일들은 교회에서 추방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로마제국 식민지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민족해방군인 열심당과 함께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례 요한 에세네파 처럼 광야에서 금욕 생활 하지않고, 장터같은 사람 사는 현장에서 병자를 치유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당시 종교권력세력인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물론 반민족 괴뢰정권 헤롯왕에게는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이라 야단치셨고, 결국 이들의 연합세력에 의해 십자가형으로 몰리셨습니다. 물론 로마총독 빌라도의 비겁함도 군중들의 무지몽매도 한 몫 했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하셨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욕하고 화내고 싶은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거지발싸개 같이 못난 사람들, 못된 일을 꾸미는 사악한 사람들… 그런데 저는 매일 성경을 봐야하고 설교를 해야 하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 말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안에도 각양각색의 못나고 못된 모습이 보입니다. 내가 남을 평가하고 정죄함도 해서는 안될 일이고, 남에 의해서 내가 판단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독립이니 자유니 이런 것들 생각하는 이 날, 내 심령 중심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자유와 해방 구원의 기쁨이 큽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뵙네 나는 만족 하였네 /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분만으로 / 나는 만족하겠네 /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