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9.11 테러 2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달 미군이 아프간을 떠난 것이 꼭 20년 만이니 9.11 테러로 시작된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The enemy becomes you.’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의 원수가 너 자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3,000명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가져온 9.11테러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나라 우선 정책이 되면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만이 아니라 국내 정책에도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목적으로 이민법 규제가 강화되고 이민자와 인종차별이 정당화되는 문화가 정착 되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잃게 된 비극적 참사는 아니라 하지만 9.11 테러는 수백만명에 이르는 서류미비자들의 미래를 가로막았습니다. 그날 국회에서는 그해 4월에 만기된 서류 미비자들이 수수료를 내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이민법 245i 를 지속하기 위한 투표가 있었지만 국회가 열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미국의 정치계만 아니라 종교계까지 양극단화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원수’가 분명하고 그 원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이 되면서 언제부터인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원수를 대신하여 눈에 보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까지도 원수 삼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정당화 되더니 최근 코로나 사태에서는 아시안 혐오범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악한 테러를 저지른 자들이나 집단을 없애야 하는 것에 미국은 일치단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년 테러와의 전쟁의 열매가 무엇인지는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미군철수가 말해줍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왜 테러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테러리스트 집단이 왜 형성되었는지 정직한 분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픔과 슬픔의 경험을 겪으면서 미국은 전쟁이 있어야 먹고 사는 집단들의 책략에 급하게 넘어갔습니다. 전쟁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탄마귀적 집단이 쓰는 방법입니다. 죽여야 할 원수를 신속하게 결정하고 사람들이 생각할 여유가 없게 전쟁으로 몰고가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한 결정적 원인은 진정 없애야 할 원수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은 전쟁을 급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권투 경기에 나가서 허공을 때리는 짓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고전9:24-27) 미국은 지난 20년 테러와의 전쟁에서 그림자를 폭격하고 허공에 총격을 가하는 짓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친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킨 이유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구원)을 위함’이라 했습니다.(고전 10:31-33) 미국도 진정 하나님 축복받는 나라가 되려면 예수님 말씀 그리고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귀 기울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뉴욕 맨해튼에 천인공노할 테러가 일어나 수천명의 귀한 생명을 잃었고 그 가운데 한인 젊은이들이 수십명이 있었습니다. 지난 20년 전쟁을 치르느라 희생된 미국 군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랍국가에도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가 엄청납니다. 그런데 지난 20년 할리버튼과 같은 군사방위산업체들이 벌어들인 돈은 기하급수적입니다. 이들은 절대로 자기들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인가 또 기회를 노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 절실합니다. 원수 삼는 것이 익숙해진 세상이 되면 내가 그 원수처럼 되는 불행을 우리가 살게됩니다. 예수님의 원수 사랑의 말씀 속에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리고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나 자신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20년 전 희생된 귀한 생명들,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하나님 위로를 기도합니다. 9.11 테러 당일 후러싱제일교회에서는 잿더미에 뒤집혀서 피신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나누어주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생명수를 세상과 나눈 것입니다. 원수만들기에 급하고 바쁜 짓들은 그만하고 더욱 사랑에 쓰임받는 교회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