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힘이 넘치고 젊었던 모세를 쓰지 않으시고 미디안 광야에 들어가 푹 썩어 아무것도 할 자신이 없게 된 중년의 모세에게 출애굽 민족해방의 대역사를 맡기셨습니다. 자기 자신이 가장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여겼던 바리새인 사울을 땅바닥에 꺼꾸러지게 한 후에 3년간 아라비아로 가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 다음에야 바울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공에 집착했던 야곱은 평생 고생하게 하시고는 고향에 돌아가 형 에서를 만나게 하셨고, 꿈을 가진 요셉은 종노릇하게 하신 후에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일에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얼마 전 어느 교회에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장로에 대해 어느 분이 말하면서 “돈 좀 벌더니 사람이 이상해졌어요.”합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교회가 좀 커지면 이상해 지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되는 것이 머리들지 말고 숙여야 할 때 바짝 들었다가 된통 얻어맞은 것과 다시 용기내어 일어나야 하는데, 기죽어서 찌그러져 낭비된 세월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이런 과정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깨닫게 된 것들입니다. 성경에서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하시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 아니라는 것 분명히 하라는 것이고 “이 싸움은 나의 것이다.”하실 때는 사람은 어떤 승리도 자기의 공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인데, 이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닫기가 오랜 세월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이 일 하시는 방법을 경험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어떻게라도 버리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가 했다고 착각하던 것들 남겨두면 언제인가 남모르게라도 내가 교만의 바벨탑을 쌓을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모세에게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약속의 땅을 보게는 하시고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셨는지 그것도 모자라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게 하셨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미드라쉬 전설에 의하면 이렇게 죽어야 했던 모세를 생각해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사막의 강을 이루었다 했습니다. 미드라쉬 이야기에 따르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면 새가 되어 날아가 보면 안되는지 소가 되어 그 땅을 밟으면 안될지 물었을 때 하나님이 단호하게 안된다 하셨다고 합니다. 출애굽의 지도자가 가나안 땅에 까지 들어가면 신격화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불행한 인간이 될 것을 하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세우는 조건은 능력(ability)이 아니라 쓰임 받고자 하는 순종(availiability)이어야 합니다. 능력은 주님의 일을 할 때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모세는 자신감도 없고 자화상도 일그러진 때였습니다. 첫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는데 말하자면 “내 인생 개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 부름에 순종하고 출애굽 역사의 리더로 세움받았을 때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지팡이라는 것은 사실 모세가 양떼를 돌보느라 들고다닌 나무 지팡이였습니다.
제 목회도 돌아보니 교회에 아름답게 쓰임 받은 지도자들은 모두 인생 큰 아픔이나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은혜를 체험한 분들이었습니다. 자기가 남보다 잘났다고 생각하거나 믿음 좋다고 착각하거나 영적 교만이 충만한 사람들은 교회에 덕이 아니라 독이 되었습니다. 내 자신 목회를 돌이켜 보아도 그렇습니다. 내 능력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 알아서 무릎 꿇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일하셨고 내가 뭔가 되기나 한 듯 착각하고 잘난 체 했던 때에는 열매가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시고 바로 제자들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셨고 본인은 산에 들어가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성경말씀에서 이 부분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 부끄러움이 큽니다. 남은 목회, 하나님 방법과 예수님 마음과 뜻을 분별하는 지혜와 믿음을 간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