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교회에서 7년차 목회에 들어가면서 여러 장로님들이 제가 어떻게 목회를 잘 못하는지 지적해 주셨습니다. 첫째, 옛날에는 매달 행정임원회를 해서 교인들이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작고 큰 일 모두 결정에 참여했는데, 이제는 교회 중심 리더들이 모이는 기획위원회를 자주 모이고 행정임원회를 별로 안하니 교인들의 불만이 많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을 바자회, 여름수양회와 피크닉이 좋았는데 안하니 재미도 없고 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옛날에는 나름대로 권력 기득권층이 분명했는데, 이제는 없기 때문에 교회 주인의식 가지고 나서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매달 모여서 다투는 회의보다 효율적인 회의가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 제 대답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잘못이 있었습니다. 효율적인 것보다 함께 모여서 자기 소리 내는 행복과 보람 그리고 참여를 통한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 강화의 중요성입니다. 요즘 한국 연속극을 보면 백화점을 소재로하는 것보다 재래시장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재래시장 나름대로의 재미와 멋이 있는데 제가 잘못 판단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신 목회의 중요성을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집 아이들 자랄 때 레슬링을 하면 제가 꼭 이기니까 “아빠는 왜 맨날 이겨야해!”하고 울면서 소리를 질렀던 것이 생각납니다. 왜 나는 내가 옳아야 하고 이겨야 하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별 문제 아니면 교인들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면 되는 것인데 그리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특정 기득권 교인들의 파워의 관행은 아닙니다. 청소년기 미국 와서 살면서 가장 싫은 것이 사람 차별이었습니다. 영어 못해서 당한 서러움, 돈이 없으면 기죽어야 하는 그리고 줄과 빽이 없으면 밀리는 그런 세상이 싫었습니다. 물론 본인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과 헌신의 주인의식으로 그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로 인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면 이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사람 차별 없는 교회와 세상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 나라가 정의와 평등, 사랑과 은혜가 원칙인 세상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시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시공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무너진 현실에는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난 몇달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교만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에게 대단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 영광이 아니면 무너뜨리시는 것이고 사람들이 아무리 무너뜨려도 하나님이 뜻하시면 세우십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분함과 원망을 거두시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며칠 전 50대 후반에 가까운 남편이 시카고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내용을 페북에 올린 옛날 교인이 있기에 “장하다!” 글을 올렸더니 “아침에 뛰는 것과 마라톤으로 지금을 이겨내고 있습니다.”하고 답을 달았습니다. 저는 다시 “지지않으면 이기는 것이다.” 답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버텨내기 어려운 현실을 살아야 하는 가정입니다. 이겨내지 못하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영화 Forrest Gump가 생각납니다. 모자라는 것 투성이 세상 천하 호구인 주인공이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아프고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소망을 가지고 사랑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코로나 사태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 잘난 체하지 말고 어렵고 힘든 세상 살리고 세우고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호구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깨우쳐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