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는 국가장으로는 하지만 유족 결정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은 하지 않는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교계에서는 장례식 순서를 맡은 목사들에 대한 찬반 논쟁이 한창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기독교 진보진영의 수장인 한국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종 목사가 광주학살 주범 장례식에서 교계를 대표하여 기도를 했다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Bitburg controversy’가 생각납니다. 1985년도 5월 로널드 레이건 (Ronald W. Reagan, 1911-2004) 대통령이 세계 2차 대전 종전 40주년을 기해 비트버그에 있는 독일군인 묘지를 방문한 문제입니다. 레이건의 방문을 지지하는 입장은 화해와 공존을 위한 미국대통령의 통 큰 정치적 결단을 지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1986년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대 포로수용소 생존자 엘리 위젤 (Elie Wisel, 1928-2016) 교수가 “우리는 용서는 할 수 있지만 절대 잊을 수는 없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600만 유대인 학살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두고두고 마음 아파하는 일이 있습니다. 80년대 중반 시카고대학 한인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할 때 이화여자대학 출신 교인들이 제게 몇번이고 “목사님, 소영이가 성경공부를 하고 싶데요. 목사님 인도하는 성경공부 초대하면 안될까요?” 그럴 때 마다 제 대답은 “독재자의 딸은 안됩니다.”였습니다. 그때 제가 20대 중반 나이였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그 말을 생각하며 회개합니다. 저는 광주항쟁 피해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함부로 용서라는 말을 거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말 할 명분을 찾자면 광주항쟁 이후 망월동 묘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10년간 찾았습니다. 광주 추모모임을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10년간 하면서 별 소리 다 듣고 어려움을 나름대로 당해야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 ‘북미주 호헌철폐 반대 성직자 워싱톤 단식대회’ 위원장으로 6일 단식하면서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당시 민주운동 어른들이 두파로 나누어져 갈등하는 바람에 어린 제가 그런 책임을 맡아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노소영씨가 아버지가 세상 떠나기 전 예수 믿도록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태우씨가 예수 믿은 것 믿을 수 없고, 그 사람 구원받고 천국갈 수가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도 노소영씨가 인생 어려움을 겪을 때 목사인 내가 그가 독재자의 딸이기에 성경공부 올 자격이 없다고 했던 말에 큰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삽니다.
내 세대의 삶, 그리고 나같은 목사의 목회 방향을 바꾸어 놓은 그 광주항쟁 이제 40년이 넘었습니다. 엘리 위젤은 제가 보스톤대학 다닐 때 ‘예언자’ 세미나 참석해서 배웠던 선생님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절대 잊지않고 나치 전범을 찾아내 법정에 세우고 있습니다. “용서는 할 수 있지만 잊을 수는 없다.”는 위젤 교수의 말 의미를 나는 감히 이해한다 할 자격이 없습니다. 광주의 아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때 모든 인간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떠납니다. 이홍종 목사님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고인의 업적을 기억하며, 한반도에서 분단과 냉전, 전쟁과 국가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며, 평화공존의 한반도를 재창조하기 위해 한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합니다. 저도 그 마음입니다.
오는 토요일 우리는 ‘약속의 땅’ 교회 묘지에 가서 합동추모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세상 떠날 때 어디 묻혀야 하는 문제로 싸움 나는 일 없고 천국소망 부활승리 믿음으로 예배 잘 드리고 떠나는 특권을 가졌다는 것이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