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부터 설교를 교회력에 따라 하려고 합니다. 제 목회 초기 20년정도는 교회력 설교를 했는데 후반 20년은 강해나 주제 설교를 했습니다. 교회력 설교는 3년을 주기로 매주 구약, 서신서, 복음서에서 하나씩 본문이 정해집니다. 단점이 있다면 설교자 개인의 취향과 무관하게 본문이 주어지니 설교자의 창의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시사성과 현장성이 결여되는 본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 말씀도 편식하는 교인들은 인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가 자기 계획과 방향성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어가기 위한 설교를 하기에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골고루 건강식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교회력 설교나 강해 주제설교나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 경우 교회력 설교로의 회복은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제 자신 목회에서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이 쌓아 올리려는 바벨탑을 무너뜨렸습니다. 신학의 발전사를 생각하면 독일 국가교회는 나치 히틀러를 동조했지만 자기와 다른 인종과 종교, 사상 그리고 사회 약자들을 탄압하고 말살정책을 편 히틀러의 바벨탑은 무너져야 한다고 믿었던 본훼퍼와 함께 고백교회를 세운 칼 바르트가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영역을 무례하게 침범하는 인본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를 도덕적 모범 인간으로, 성경을 윤리적 지침서로 여겼습니다. 바르트는 예수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심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기에 질문은 세상에서 던지지만 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 분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 신정통주의(neo-orthodoxy) 입니다. 바르트나 본 훼퍼가 신정통주의 신학의 입장을 고수하게 된 것은 인본주의의 끝에 드러난 히틀러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인간 우상화 바벨탑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국가는 물론 교회에서도 수많은 히틀러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신학과 사상이 존재합니다.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neocon)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고백교회에서 도전 받아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교회가 잘못되면 나치 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교회 권세잡은 자들이 잘못되면 히틀러를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대중 선동가였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죽이고 제거해야 할 대상을 선정하고 반복해서 구호를 외치고 국가이익을 하늘의 뜻으로 그리고 자신이 하늘의 뜻을 이루는 메시아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네오콘’을 추종하는 교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제가 교회력 설교 이야기를 하다 이런 장황한 말을 하는 이유는 성경전체를 복음서를 바탕으로 읽어내고 설교하지 않을 때 편협적이거나 파괴적인 신앙의 열매들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를 빼고 믿으려는 교회가 되면 인종과 사회적 약자 차별 그리고 나아가서 ‘네오콘’ 우파정치 이념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력 설교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 가운데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성의 회복입니다. 어린이 주일학교부터 모두 같은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민교회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신앙교육의 연결성과 지속성의 부재입니다. 각 세대별 독특한 필요를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교회에서 세대간 영적인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공교회성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회복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물론 교회력 설교를 한다고 이런 일들이 쉽게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노력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교회력 설교 준비를 위해 주일학교 전도사부터 모든 사역자들이 함께 설교를 준비한 때가 있었습니다. 동네 목사들 가운데 여러명이 동참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성경을 보는 눈과 마음을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참 좋았었습니다. 모임이 중단된 이유는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제가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력 설교로의 회복은 제게는 첫사랑과 초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작은 몸부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