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시카고에서 개척교회 할 때 항상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교회에 오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말이 별로 없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잘 보지 않았습니다. 가까워 진 후 이유를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연극영화과를 다니다가 미국 유학 간다고 왔는데 현실은 매형 집에 얹혀살면서 주유소 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어느 여름날인데 오픈 스포츠카가 들어오기에 나가다 보니 대학 친구들인 것을 보고는 바로 주유소 뒤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숨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모자를 눌러쓰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하면서 그 사람 모자 벗는 날을 소원했습니다. 어느 날 모자 벗고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애틀란타에서 목회할 때 타지에서 은퇴 후 오신 장로님이 얼굴 한 쪽이 마비되고 전혀 웃지를 않으셨습니다. 심방을 갔을 때 아이비리그 의대 출신 아들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후에 그리 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로님에게 “장로님 웃으시는 날을 기도하겠습니다.” 했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난 후 예배를 마치고 나오시면서 장로님이 “저 이제 웃을께요.”하시며 저를 포옹하셨습니다.
지금도 주일에 웃음을 잃어버린 분이 웃기를 바라고, 모자를 벗지 못하는 분이 모자 벗는 날을 소망하면서 설교 합니다. 제가 잘하는 것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당시 그 사람 얼굴 분위기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잘 못하는 것은 사람 이름, 시간의 순서와 숫자와 연관된 것입니다. 전화번호도 전화기에 있으니 누르는 것이고, 아내 것도 교회 사무실 번호도 기억 못합니다.
찬송가 중에서 외워서 부르는 것은 ‘좋으신 하나님…” 정도이고 성경을 정확하게 암송하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찬송가를 부르면 쉽게 은혜 받고 성경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고 예수님이 가까이 계신 것이 생생합니다. 목사노릇 40년 넘으니 못하는 것 때문에 안달하지 않고 그래도 잘하는 것 있으면 그것에 감사하면서 하려고 합니다.
품성 테스트에 나비와 독수리, 참새와 비둘기 4유형 가운데 저는 항상 나비와 독수리가 나옵니다. 나비는 창의적이지만 자기가 싫은 것 안하는 이기적인 유형입니다. 독수리는 높이 올라 멀리 보지만 외롭습니다. 원래 제가 그런 인간인데 목회 오래해서도 그렇고 나이를 먹으면서 참새와 비둘기 유형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은사 테스트를 해도 섬김의 은사는 거의 빵점이고 권위의 은사는 거의 만점입니다.
얼마 전 선배 어른이 “뭘 어찌했기에 김목사에게 한 맺힌 사람들이 그리 많아?” 하시면서 웃으십니다. 제 인생 돌이켜 보면 철없는 나이에 목사 되어서 미국교단에서 좀 인정해 준다고 잘난 체 하면서 많은 사람 자존심 상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민주통일운동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정의로운 인간인 것 처럼 언행이 교만했을 것입니다. 목회하면서도 교인들 어려움과 아픔을 깊이 들여다 보지 못하고 나비와 독수리식 목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교회가 갑자기 부흥하면서 목사에게 필요한 신앙 인격은 물론 모자라고 부족한 면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 후러싱 목회 7년차입니다. 여기에 와서도 좌충우돌 참 파란만장했네요. 저는 코로나 사태 지난 2년이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내가 계획하고 추진하고 뭔가 이루어야 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 온 내게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죽어야 사는 중요성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한 나의 생각은…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제 목회 변함없는 것은 우리 교인들의 무덤 문이 열려 주님께로 오는 것, 감옥이 예배당 되는 것, 지옥이 천국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