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올림픽 드림 선교 센터 기공식을 마치고 온두라스에서 떠나 오는 날 비행기가 캔슬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일찍부터 공항 카운터 앞에 한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니 주일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목사인데 이번 주가 고난주일이기에 꼭 가야한다고 사정을 했습니다. 직원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니 좀 높은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한참이나 찾는데, 안되는지 난감해 합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게 해주세요.” 한참 애를 쓰더니 다른 항공사에 달라스 들려 하루를 자고 토요일 아침에 뉴욕 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온두라스는 가톨릭 영향으로 고난주간이 가장 중요한 명절인데, 고난주일 설교해야 하는 목사가 있다고 하니 여러 직원들이 나와서 애를 쓰고 도와준 것입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온두라스는 가난한 나라인데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능력이 높았습니다. 62세 이상은 식당에서 25% 할인해주고 어디를 가도 줄을 따로 서지 않도록 배려를 해줍니다. 제가 출국 수속을 하다 비행기표를 받지 않은 것이 발견되어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급해서 양해를 구했더니 모두 길을 열어주는데 아무도 불평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목요일 코로나 검사를 하러 도시에 들어가는 길이 모두 막혀서 둘러 보니 버스운전사들이 도로를 막고 타이어를 태우며 시위를 하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화를 내지 않습니다. 저 사람들도 먹고 살려고 110도 무더위에 타이어를 태우면서 시위하는 것이니 국민들이 참아준다는 것입니다.

마음 졸이다가 극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온두라스를 떠나면서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한인 감독이 만들고 주연으로 나오는 ‘Blue Bayou’인데, 한인 입양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지켜내려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추방당하는 내용입니다. 그 아픔과 슬픔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4월 16일이 세월호 8주기입니다. 한국 뉴스에 장애인들이 지하철 개선을 위해 시위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4월 22일이 ‘지구의 날’입니다. 초등학교에서 “빙산이 녹으면 무엇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어느 아이가 “북극곰이 울어요.”라고 답을 썼다고 합니다. 지구가 아파하는 것을 어린아이가 공감한 것입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 함부로 잔인하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과 가장 차이점은 공감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우셨습니다.(요한 11:35)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했습니다. 성경 기록에 바리새인들이 울었다는 것은 없고 분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뻐했다는 것은 없고 예수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온두라스에서 놀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나라에 Corea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만 오천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데, 거의 모두 산속에 고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멕시코 유카탄 애니깽 농장 한민족 후손들도 그렇고 6.25가 끝나고 반공 포로들이 인도, 쿠바, 아르헨티나 등으로 흩어져서 살아온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지만 ‘코리아’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중남미에 많이 산다는 이야기에 놀랐습니다. 고려가 망하면서 그 땅을 떠나야 했던 왕족의 후예들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재일동포가 만든 ‘아리랑’ 다큐에 보면 나라를 빼았긴 조선인들이 일본, 중국, 중앙아시아 등 흩어져 살면서 모두 공통적으로 불렀던 노래가 아리랑이었습니다. 고난이 컷던 재일동포와 중앙아시아 동포들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는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파친코’ 이민준 작가가 뉴욕에서 살아온 경험을 재일동포의 한 맺힌 아픔과 연결해내고 유대인들을 포함한 타민족의 아픔을 공유해 내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기만 합니다.

오늘이 고난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 사랑의 완성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알면 우리가 이 세상 어느 누구의 아픔과 슬픔이라도 예수님 마음으로 품어내고 공감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 십자가 은혜와 부활 승리가 우리를 살게 하는 능력이 되고 우리가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