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 이정용교수님의 신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임찬순 목사에게 “이 교수님이 살아계시면 오늘 우리 교단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뭐라 말씀하실까?”라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엊그제 제가 던진 질문과 관련해서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하는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오고 드류신학교에서 이 교수님 밑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는데, 항상 만날 때마다 제게 질문을 많이 하는 친구입니다. 언제인가 저에게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이 시대의 거대담론(The Grand Narrative)은 무엇인가요?” 묻기에 “난 그런 거 몰라 그냥 목회나 열심히 하는 거지. 그리고 공부 제대로 하지 못한 나에게 어려운 질문하지 말아!”했습니다.

보내 온 글에 이정용 교수님이 제가 던진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셨을지 생각하게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눌함’입니다. ‘속내가 들어있는 언어’이면서 ‘알지 못함의 구름’이라 했습니다. 자기비움(케노시스)를 통한 겸손으로 계속 더 높은 영적 깨달음을 위한 탐구의 정신이라 했습니다. 이 교수님이 시카고에서 목회하던 저를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김목사. 드류에 와서 박사공부 해.” 그냥 그 말 한마디 던지셨습니다. 30여년 넘는 오래전인데 강요함이 전혀 없는 그러나 사랑이 가득 담긴 어른의 말씀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눌함’은 자기 생각을 절대화 하는 교만, 목적 달성을 위해 강요하는 무례함을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예수 십자가의 자기비움과 사도바울이 말한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알지못함에서 오는 배움에의 목마름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둘째로 이 교수님은 ‘모퉁이’(마지널리티, 주변성)를 제시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만나자고 한 갈릴리가 바로 그 모퉁이일 것입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양 극단의 경계에 있는 땅인데 여기가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으시고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 선포하신 곳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이 모든 부정이 아니라 포용하는 양면긍정입니다. 그리고 양면긍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가능을 여는 자리가 모퉁이입니다. 이 교수님이 제게 ‘민들레 이야기: 12에게 전하는 설교’(Sermons to the twelve) 책을 주셨습니다. 노스다코다 대학 교수로 계시면서 주일이면 2시간 떨어진 곳에 ‘이중문화가정’ 12명이 모여있는 교회에서 수년간 설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고 섬기는 종됨의 목회를 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된다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죽고 갈릴리로 가신 주님을 따라가는 목회입니다. 사마리아는 ‘가지 말아야 하고 만나지 말아야 하는 인간들이 사는 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요한 4:4) 했습니다. 교회가 갈릴리로 가야하는데 큰 도전은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갈릴리로 가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잘 아시면서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 구원받게 하신 것이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학적으로 보수냐 진보냐 이런 것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전 4:20)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예수 사랑과 살리는 능력이 없는 진보나 보수는 쓸모가 없습니다. 이런 것은 자기중심적 신앙의 산물입니다.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은 일로 교회가 바쁘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어도 예수님이 가라 하신 곳에 가야 하고, 하라 하신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목요일까지 달라스에서 연합감리교 한인교회 총회가 열립니다. 수요일 저녁 집회에서 제가 설교를 합니다. 어려운 교단의 현실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목을 ‘오직 주님이 하시고 아신다’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골짜기에 아주 마른 뼈다귀들을 보여주시면서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물으셨을 때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대답입니다. 그 겸허한 대답에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에스겔 37:14)고 하셨습니다.

나는 잘 모르고 또, 하지 못하지만 모든 일 오직 주님이 하시고 아시니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