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여름성경학교 개회예배 설교를 하라 하기에 주제가 뭐냐 했더니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요셉에 대해 말하면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다.”라는 메세지를 하고 모두 손가락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하며 따라 외치라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다!”(I am magnificent, monumental, masterpiece!) “나는 하나님이 만드셔서 천하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다!”(I am beautiful because God made me!) 어린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목소리 높여 복창하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세상 어느 누가 너희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니 듣지 말아라. 너희들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40여년 전에 제 스승께서 준엄하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젊은 놈이 진리에만 관심을 가져야지 왜 유리와 불리를 생각하느냐!” 며칠 전 교단의 문제로 대화를 하던 친구가 제게 화를 냅니다. “김정호답게 살아!” 그 말을 듣고 도대체 내가 나 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을 해보는데 답이 잘 나오지를 않습니다. 연합감리교에서 나가는 일에 앞장서는 목사가 “목사님 그런 말씀 때문에 사람들이 혼동합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남는 일에 앞장서는 목사가 “박쥐인지 베트맨인지 결정하세요.”라고 재촉을 합니다. “나는 뽀빠이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려다가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라 참았습니다. 왜 누구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에게는 저렇게 말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역할이 누구를 설득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거나 나가거나 자기가 알아서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거나 나가거나 다 어려울 것이 분명하니 오히려 목회 바닥을 잘 점검하고 목사는 교회 잘 지키는 것에 관심가져야 합니다. 만약에 교인들이 나간다고 하면 잘 나가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고 목사 자신은 남고 싶으면 남아서 어느 교회에 가서라도 목회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행여 교인들이 남겠다고 하는데 목사는 나가고 싶으면 목사가 나가면 됩니다.

요즘 뼈아프게 깨닫는 것이 나는 판단력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잘 볼 줄 모릅니다.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엇박자로 맞춰서 손해 많이 봤습니다. 앉아야 할 자리 일어나야 할 자리를 구별 잘 못해서 비난도 받았습니다. 적군과 아군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고 그러다가 양쪽에서 총맞는다고 협박도 받았습니다. 결정장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것은 평생 그랬습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단호하고 확실하고 정치적인 판단이 빠르고 상황분석과 현장점령 능력이 탁월하다고 여깁니다. 내가 아는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름 탄 도사와 같은 담임목사님 밑에 있다가 어느날 쫒겨났습니다. 질문을 잘못해서 그랬습니다. 어느 날 목회자 모임에 가려고 했더니 “너는 까마귀 노는 곳에도 가느냐?” 하시기에 “누가 까마귀며 백노인가요?”했다가 혼이 났었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공중에 떠있으면 안되고 삶에서 검증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진정한 자유는 평범한 삶의 책임 아닌가요?”라고 질문한 그 다음날로 교회 더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나는 어려서 부터 편가르는 것 불편해 했습니다. 살면서 보아도 내 편이 꼭 좋은 것도 아니고 다른 편이 모두 나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80년대 젊은이들 중심으로 진보적 목회할 때는 단호하고 빠르고 용감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 애틀란타에서 목회할 때는 갑자기 교회가 부흥하면서 대세와 흐름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내 신념을 지키느라 노력을 했지만 전혀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해보지 못한 일을 하게 되면서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뉴욕 후러싱에 와서 목회한지 이제 7년입니다. 후러싱목회는 함부로 판단하면 안되는 목회입니다.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단순하게 목회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지고 교회 회복과 다시 부흥을 위한 에너지 투자도 어려운데 교단 분리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우니 힘이 듭니다. 무엇보다 나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 결단하라는 소리와 깃발을 들라는 요구까지 있으니 답답합니다.

김정호답게 살라고 화를 내는 친구에게 김국환의 ‘타타타’를 불러주고 싶습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거지. 음음음 어허허…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어허허허허허허…”

오늘 교회력 본문에 보면 18년 허리굽은 여인에게 예수님이 “여인아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하시는데 영어로 보면 “Woman, you are set free!”라고 되어 있습니다. 허리굽게 만드는, 기죽게 하는, 사람 초라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로 부터 자유하라는 말씀입니다. 참 고마운 말씀입니다. 우리를 묶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 모두 자유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