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큐티모임을 기다리는데, 교회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중고등부 아이들이 하루 수양회를 한다며 떡복이와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접시 올려주기에 맛나게 먹었습니다. 행여라도 늙은 담임목사가 나타나면 아이들 흥을 깰까 싶어 몰래 보니 천하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새벽 설교 낮에 녹화했다가 틀어도 되니 편했는데 대면으로 새벽기도 오픈이 되니 설교만이 아니라 뒤에서 온라인 방송해야 하고 목회자들 심신이 피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새벽기도 대면으로 열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장로님 한 분이 최후통첩을 하니 할 수 없이 열어야 했습니다. 아직도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분들보다 온라인으로 새벽기도 드리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며칠 전 본문이 너무 재미없고 뭘 설교할 지 난감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도 목사의 책임이니 강단에 올라서 뭐라고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작 설교하는 제가 보기에도 재미없고 은혜가 별로 되지 않는 내용인데, 늘 자리를 지키시는 권사님들 얼굴이 환하게 기뻐하며 소리나지 않게 입을 열어 아멘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 가득 찬 감사가 몰려왔습니다.

제가 세월의 흐름을 가장 실감나게 느끼는 때가 감사절입니다. 꼭 46년 전 아버지가 추수감사주일 설교하시다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하나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60년대 초반 미국 유학을 떠나셨다가 가족 이민 초청을 위해 영주권 받기 위해 10여년 떨어져 있던 아버지와 만난 지 꼭 3년이 되어 조금 정착하려고 하는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동생들은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는데, 앞이 캄캄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금 저도 메디케어 받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요즘 여호수아 새벽기도 본문에 보면 광야 1세들이 거인 아낙족속에 겁에 질려 하나님 약속 불신하고 믿음 없는 언행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 그리고 광야 2세들은 그 아낙자손들을 물리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제 자신의 미국생활 돌아보면 정말 나는 메뚜기 같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고 세상은 거인 골리앗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를 두렵게 했던 수많은 거인들을 물리치고 오늘 여기에 있다는 것이 오직 하나님 은혜이기에 감사가 넘칩니다.

아버지가 늦게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실 때 너무 작은 교회를 목회하시기에 저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코딱지만한 교회 창피해”라고 주일날 교회 갈 때만 되면 불평을 했었습니다. 20명도 안되는 작은 교회인데, 원로목사님까지 계셨고 사모님이 반주를 하셨는데 주보에 345장이 되어 있어도 그 할머니는 245장을 치시고는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웃으면서 “사모님, 345장입니다”하면 그 할머니는 아버지를 째려보고는 “그냥 합시다”하고 그냥 245장을 반주하시고는 했습니다. 월급을 받을 수 없는 목회였기에 밤일을 하셨고 나이 40중반에 이르러 영주권 받기 위해 포기했던 못한 공부를 마치려고 공부까지 시작하셨다가 결국 50도 한참 안된 나이에 쓰러지고 마셨습니다.

아버지 떠나고 하늘이 무너졌던 날들이 있었기에 가을이 깊어질 때마다 애통의 슬픔을 감사의 고백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그득합니다. 신학교 졸업할 때 그랬고 목사안수 받을 때 아버지가 많이 그리웠습니다. 이제는 손자 손을 잡고 교회 마당을 걸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바울이 “나의 나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처럼 저도 입에서 이 고백이 자주 나옵니다.

개인은 물론 가정 그리고 교회도 애통을 희락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수치를 굴러 가게 하신 은혜가 있고, 고난의 흔적이 예수 생명이 증표가 되고 죽음의 두려움이 부활 승리의 기쁨되게 하신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 2022년 한 해는 진정 회복의 은혜가 가장 큽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교회의 앞날에 있을 지 몰라도 오직 우리는 ‘Sola Fide, Sola Gratia’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나아갈 것입니다.

신비주의자 마에스트로 에크하르트의 말입니다. “당신 인생 전체를 통해 단 한번의 기도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It the only prayer you ever say in your entire life is thank you, it will be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