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라,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라, 교회는 한국인 자신의 교회이어라”.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창시자이신 최태용 목사님의 이 말씀을 요즘 생각하게 됩니다. 이 교단은 미국 선교사의 도움없이 자생적으로 시작된 개신교 교단입니다. 기독교의 한국 토착화를 주장하는 진보적 성향이 있어 창립 초기부터 민족의 주체성과 민주적인 세상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교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있는 최태용 목사님의 손녀가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제가 개척한 교회 교인이었고 손자 김성만선생이 80년대 초반 웨스턴 일리노이 주립대 유학시절 한국 정보부가 조작했던 ‘구미유학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미국에서 구명운동을 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라는 말은 너무도 귀합니다. 일제 침략 식민지 시대였던 1935년도에 창립된 교단인데 그 때 벌써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라’고 했고 ‘교회는 한국인 자신의 교회이어라.’ 선포했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신앙과 신학의 혼돈 시대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한국에서는 지난번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에서 한국기독교협의회(NCC)와 세계기독교협의회(WCC) 탈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특정한 지향이나 사상과 이념에 묶이는 분이 아닌데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나 뜻이 다르면 쉽게 적대관계를 만듭니다. 그런 성향이 강한 집단일수록 자기가 원하는 목적이 분명해서 성취력이 높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성향이 별로 없는 복음교회는 교세가 늘어나지 않는지 모르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이루는 일에 대한민국에서 앞장서는 교단으로 오늘까지 건재합니다. 학문적이라는 것은 배운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만 우겨대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또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 배울 줄 아는 겸손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 연합감리교회(UMC)에서 탈퇴하는 글로벌감리교회(GMC)에서 목사양성 신학교로 인정하는 6개 신학교 명단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보스톤신학대학원이나 3년간 신학생들을 지도했던 게렛신학대학원이나 저와 사역을 함께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부한 에모리신학대학원이나 드류신학대학원 또는 웨슬리신학대학원은 명단에 없네요. 여러 이유가 서로에게 있을 것입니다. 뭔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것 같지만 화해와 일치, 협력과 상생, 평화 이런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 난무한 현실이 많이 불편합니다. 물론 글로벌감리교회는 연합감리교 신학교들이 진보진영이니 서로 관계하기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현실이 신한은 학문적이라는 열려있는 틀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진영이나 성향이나 지향이나 그런 것에 묶여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교회들은 이런 것들에 묶여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정말 진보진영 그렇게 정의로운가요? 보수진영은 그렇게 성경적인가요? 초월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복음적이고 생명적인 교회였다면 오늘 이 시대 교단이나 교회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못했습니다. 회개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선언과 주장이 빠릅니다. 앞으로 진보를 표방하는 연합감리교회나 보수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글로벌감리교회나 진짜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지 않으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생명은 예수에게 있습니다. 예수 구원의 복음은 열려있습니다. 신학이 학문적이라는 것은 배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국인 자신의 교회이어라”는 말은 일본에게 침략을 당해 식민지로 있었던 조선의 교회에 외쳐진 소리입니다. 주체적이어야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어느 교단에 속한다고 해도 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적이고 생명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 주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교회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도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때에 있습니다. 복음적이고 생명적이고 주체적인 교회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