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말하는 헬라어 ‘하마티아’는 ‘과녁을 벗어난 화살을 뜻합니다. 교회도 목적을 상실하고 과녁을 벗어난 일에 열심일 수 있는 위험이 항상 존재합니다. 목적과 목표에 집중하고자 코로나 이전 열심이던 ‘믿음의 친구들’(Band of Brothers & Sisters)을 재개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친구’는 말씀묵상 (QuietTime)과 말씀실천(ActionTime)을 함께하는 전도와 선교의 기초 단위입니다. 중풍 걸린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온 4명의 친구를 생각해 4명이 한 모임이 됩니다. 모여서 우리네 중풍의 현실이 무엇인지 나누고 예수님 말씀으로 치유되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내 중풍의 현실이 치유되면서 주변에 예수님 만나 고침 받아야 할 친구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사람일 수도 있지만 고쳐져야 할 세상 문화, 가치관, 구조 악, 환경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친구들’ 회복의 중요성을 생각한 것은 회복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부터 영어권 목회는 물론 주일학교 사역 전반에 걸쳐 사역자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을 찾는다고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연합감리교 전반에 걸쳐 사역자가 부족하니 후러싱제일교회 조금만 있어도 미국인 교회 담임목사로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교회로서는 힘겨운 노릇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 일’을 사역자에게 돈 주고 맡기면 된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리교는 원래 평신도 신앙운동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성직자 중심 제도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가 주일학교 사역자들에게 한국 천안갈릴리교회를 연구하라고 했습니다. 천안갈릴리교회는 모든 시스템이 주일학교 교사 중심입니다. 교사로 임명되면 그때부터 학생을 전도해서 반을 구성하고 교사가 학생들 신앙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가집니다. 제가 4년 전에 그 교회 주일 저녁 집회를 인도했는데 앞에 수백 명의 아이들이 제 설교를 듣느라 눈이 초롱초롱한 것을 보았습니다. 설교를 끝내고 통성기도 시간이 되니 그 아이들이 강단에 올라와 두 손을 들고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주일학교 교사를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큰 도전이었습니다. 이번 달 마지막 주일 저녁 다시 설교하러 가는데 더 잘 배우고 싶습니다.
교인들이 예수님 제자가 되어 사역을 하는 것이 목표이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사역을 하는 것이고 목회자들은 이것을 돕는 역할을 해야 제대로 되는 교회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교회에 적용하면 목적을 상실한 일에 교회가 자꾸 끌려다니다 보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됩니다. 교회가 존재 목적과 관계없는 일로 분주하고 열심이면 도떼기 시장되기 십상입니다. 아니면 메뉴 종목만 많고 먹을 것 없는 식당과 같이 됩니다. 교회가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단순화(Simplification), 전문화(Specialization) 그리고 표준화 (Standardization)의 3 S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사역 집중과 3S가 ‘믿음의 친구’를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가(교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 묻지 말고 내가 국가(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라” 외친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제가 연합감리교회 교단 근본적인 문제로 보는 것은 전도와 선교의 기본단위가 되는 개체교회를 연회가 관리해야 하는 하부조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목회 최전방에서 영적인 전투를 치뤄내야 하는 야전군들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회사로 볼 때 생산에는 관심이 없고 수익 분배만 관심 가진다면 회사 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 좌파는 분배의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우파는 생산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생산과 분배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못난 좌파나 우파는 그것을 갈등 관계로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예수 잘 믿어 믿음의 열매를 맺는 것 못하면 교단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알아야 합니다.
‘Band of Brothers’는 2차대전 당시 미국 공수부대가 독일 후방에 침투되어 히틀러 나치 군대를 공격해 나가는 내용의 영화 제목입니다. 평범한 군인들이 전우애로 뭉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전투를 치루면서 위대한 군인이 되어갑니다. 예수 믿으면서 우리를 중풍 병자로 만드는 세상의 악한 현실과 함께 싸우는 ‘믿음의 친구’가 되어 평범한 한 사람의 교인들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풍병이란 모습은 갖추었는데 구실을 못 하는 것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중풍의 현실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로 표현 했습니다.(딤후3:5) 교회가 각양각색 이런저런 구색은 다 갖추었지만 존재 목적을 상실하면 목표를 빗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사랑 성령 능력으로 중풍병에서 고침 받고 제구실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