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표기도를 맡은 장로님이 어제 “내일 어머니 주일인데… 어머니 살아생전 불효한 아들이 하나님께 뭐라 기도할지요”하십니다. 제 친구가 며칠 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 5월 8일은 어머니날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현듯 보고 싶어 셀 폰에 들어있는 사진을 열다가 흠칫 놀란다. 아, 내가 엄마 사진을 찍어드린 적이 있었던가. 족히 수천 컷은 되고도 남을 사진들을 훑었다. 엄.마.가.없.다. 자식들 사진, 손주들 사진, 아내 사진, 내 사진은 별별 곳에서 찍어 이렇게 많은데 엄마는 없다. 겨우 몇 장 찾았다. 그냥, 우연히 찍은 사진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없다.” 장로님이나 나나 내 친구나 이제 70살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모두 엄마가 보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없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불효라고 하면 나도 뒤지지 않은 아들입니다. 물론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40대 초반에 목사 남편 먼저 천국에 보내고 억척스럽게 사셨습니다. 이민의 기적이라고 하면 영어도 못하고 배운 것 별로 없지만 자식들 키워야 하니 열심히 사신 분들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장례가 끝나고 난 후 자식들 앞에서 한 번도 우신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사랑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우리 3형제에게 눈물 감추신 것입니다. 토요일 늦은 저녁 세탁소에서 돌아와 많이 아프셔도 주일이면 교회 가셨고 월요일이면 새벽에 일 나가셨습니다. 아픈데 하루 쉬시라고 하면 어머니는 “나는 집에 누워있으면 더 아프다” 하시면서 가셨습니다.
애틀란타에 자리 잘 잡고 목회를 하게 되면서 시카고에 계셨던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고 오려 했더니 두 분 모두 “내가 왜 거기 가서 너희들 시집살이를 하니. 내 교회가 좋다. 안 간다” 하셨습니다. 두 분이 모두 남편들이 목사였으니 목사 가족들이 교회에 있는 것 도움이 안되는 것 잘 아셨기에 그리 약속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동생들이 있는 덴버로 가셨는데 바로 밑의 동생이 50대 초반에 은퇴했습니다. 왜 일찍 은퇴하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치매 초기셨습니다. 동생이 어머니 일로 목회하는 저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오랜 동안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치매가 진전된 후 찾아 뵈었습니다. 정신이 좀 드시면 “여기 왜 있니 교회는 어떡하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떠나시기 전 뵙고 하루 지나 토요일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생이 “엄마 마지막 가는 길인데 가야 해?” 했지만 내일이 주일이니 안된다고 하고 그냥 왔습니다. 월요일에 가려고 했더니 큰 딸이 할머니 떠나시면 어쩌려고 그러냐 당장 가라고 해서 주일 저녁 가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한 시간 옆에 있었는데 내가 피곤해서 조는 것을 보고 동생이 들어가 자라고 합니다. 한 시간 가량 잤는가 하는데 어머니 떠나셨다고 합니다. 내가 큰아들인데 어머니 떠나실 때 한 시간도 옆에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살아계실 때 철이 들었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내가 아비가 된 지 40년이 넘고 할아버지가 되고 나니 더 많이 엄마한테 미안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없습니다. 어머니 주일 대표기도 나는 목사라서 안 해도 되니 참 다행입니다. 어머니주일 아침이면 어머니는 설교 준비하는 내 앞을 지나가시면서 늘 일부러 말씀하셨습니다. “네 어미에게나 잘해라.” 어머니에게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주일 설교는 진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 주일은 나같은 불효한 목사는 교회에 오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인생 돌이켜 볼 때 후회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깨달아야 할 것을 다 깨달으면 죽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공자도 부처도 다 그리 말했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처럼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그 지혜를 아는 열매를 먹고 인간의 조상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철이 늦게 드는 것은 하나님이 뜻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행이도 사도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 말씀 다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 없다고 했던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자기 죄로 인해 애통해하는 죄인을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인생 말년 후회가 너무 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들이 그래도 내가 죽은 후 내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아비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키울 때 가끔 “나를 키우면서 어머니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하게 될 때마다 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자녀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성인이니 내가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역할이 잔소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긍정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의 이 마음을 아이들이 알아주면 좋겠지만, 아니라고 해도 그리 섭섭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내 부모에게 잘못한 것 속죄하는 마음으로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냥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신 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후회 없도록 사진 많이 찍으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