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제 후러싱제일교회 담임목사 취임 예배 때 김민기 선생의 ‘상록수’를 목회팀이 특송으로 불렀습니다. 교인 한 분이 눈물을 글썽이며 “목사님 저 오늘 상록수 노래 들으면서 울었어요” 하시면서 “그런데 교회에서 그런 노래 불러도 되나요? 목사님 괜찮으실지 걱정돼요” 하셨습니다. 사실 오늘 예배 시간에 김민기의 ‘친구’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눈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그런데 어느 노래이건 그 노래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불러야 노래가 살아나는데 어제 목회실 회의를 시작하며 ‘친구’ 같이 불러볼까 했는데 부목사들은 전혀 김민기 선생을 모르는 세대였습니다. 부목사들이 모르는데 담임목사가 설교 가운데 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오래전에 김지하 선생님이 애틀란타에 와서 강연을 하셨는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 다음날 찾아 뵙고 물었습니다. “어제 강연하실 때 왠지 원주의 장일순 선생님 뜻이라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서 궁금했습니다.” 깜짝 놀라면서 “내 스승입니다” 하셨습니다. 저는 장일순 선생님을 책으로만 알았습니다. 20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까운 선배들과 만나려고 연락을 했더니 내가 가능한 주일 저녁에 아무도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그날 원주에서 선생님 10주기 모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떠나시면서 10년간 자신을 추모하는 어떤 모임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10년이 되어 모인다고 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을 스승으로 가깝게 모셨던 분들이 김민기와 김지하입니다.
존재로 가르침을 주는 어른이 계시면 큰 축복입니다. 장일순 선생님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지 말고 겸손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겸손한 예수님의 사랑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20년 전 주일 저녁 만나려고 했던 선배 가운데 한 분이 서울대 대학원장을 지내고 오래전 은퇴한 임현진 교수입니다. 제가 80년대 초반 보스턴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그분은 하버드에서 사회학 박사 공부를 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알려진 가문과 최고 학벌 출신인데 언제나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고 돌보셨습니다. 저와 가깝게 된 것은 연말이면 MIT에서 보스턴 지역 대학원생 파티가 열리는데 그 형님은 나이가 많은 노총각이고 나는 신학생이니 여학생들이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항상 둘이 뻘쭘하게 있다가 춤을 추는 시간이 되면 찰스 강변에 나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형님은 당시 성요한감리교회에 다녔는데 저는 그 교회 전도사 하다가 담임목사님이 너무 사회참여의식이 없는 분이셔서 광주민주항쟁 이후 그 교회를 떠나 보스톤한인교회로 갔습니다. 보스톤한인교회는 당시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교회였고 성요한교회는 그렇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엘리트 중 엘리트인 그 형님은 엘리트들이 모인 교회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장일순 선생님 영향을 받으셨다는 것 알았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친구’와 ‘’아침이슬’을 불렀습니다. 김민기 선생은 그의 노래처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떠났습니다. ‘아침이슬’이 사랑받는 이유는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주니 정의니 외치고 투쟁하다 ‘작은 미소’의 아름다움을 상실하기 쉬운데 그의 노래가 있어서 인간미와 동지애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 전 애틀란타에서 목회할 때 그날 주일이 5월 18일이라 설교 시간에 “오늘 성경본문과 아무 관계가 없지만 갑자기 이 노래가 부르고 싶습니다” 하고 출정가 ‘동지들 모아서’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목사가 그러면 안 되는데 그랬습니다. 그런데 대구 출신 장로님 한 분이 예배 후 “아이고 우리 목사님 못 참으셨네요. 잘하셨어요” 하면서 포옹해 주셨습니다. 그런 너그러운 장로님 계셔서 저 같은 사람이 아직까지 목회할 수 있습니다. ‘상록수’를 취임 예배 때 특송으로 불렀는데도 시끄럽지 않은 마음이 넉넉한 교인들이 계신 교회이기에 하나님은 후러싱제일교회에 어떤 어려움의 고비도 잘 넘기는 성숙함을 주셨습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상록수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