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레이너 목사가 ‘교회의 불량배’(church bully)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들은 항상 ‘적’을 만들고 연약한 교인들 굴복시키려 하고 자기 원하는 것에 모든 것 맞추려 싸운다. 이들은 끊임없이 싸움을 벌여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적이 필요하다. 이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불량배 교인이란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이들은 자신들이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이며 교회를 구하고 지키는 영웅으로 착각하고 산다.”
감사한 것은 필요할 때 ‘교회 세우는 자들’(church builders)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꼭 필요한 자리에 있어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인 장례 때 성가대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부르는 것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난번 교회협의회 할렐루야 대회 때 찬양 부탁을 받고, 여름인지라 성가대원 모으기 어려워 걱정했는데 그 큰 무대를 가득 채우도록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평상시 성가대 서는 것 본 적이 없는 권사님들 장로님들 뵙고 많이 감사했습니다. 4살짜리 제 손자가 주일 교회 식사를 좋아합니다. 그 아이는 그 식사를 준비하고 다 끝나면 설거지하는 분들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에 들으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 있어야 하는 것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웬만한 성자가 아니면 참기 어려운 꼴도 보고 참아야 하는 주차사역의 어려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목자의 마음으로 교회 사랑 섬기는 손길들이 있어 교회가 가능한 것입니다.
어제 한국학교 개강식 기도하러 갔는데 여름학교를 다녔던 히스패닉 어린이 자매가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러 온 것입니다. 이들이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마음이 귀합니다. 예배당 여러 곳에 휠체어를 놓는 자리가 있습니다. 뒷자리만이 아니라 중간 양옆에도 있습니다. 모든 설교 원고를 프린트해서 잘 듣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준비도 하지만 영어로 번역해서 화면에 올려 언어로 예배 시간 차별받는 일 없도록 노력합니다. 급식프로그램, 블래싱 스토어, 전광판을 4개 언어로 하는 것, 텃밭, 화단, 태양광 설치를 통해 환경보호에 참여하는 것 다 그런 선하고 아름다운 뜻과 마음입니다.
이 시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신앙적 인격 형성의 부재’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클랙슨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주자.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모른다…불행을 맞은 사람들을 보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고도원, 아침편지)
장영희 교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문학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고 남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는 마음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하신 말씀이요. 살아가면서 ‘내가 저 사람이라면…’하고 생각하는 것,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86쪽)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예수 마음을 가진 공감 능력이 있습니다. 남의 어려움과 아픔을 보면 목자의 심정이 되어 기도합니다. 자기 자랑, 자기도취, 불평, 원망, 정죄 이런 것들 감옥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감옥에서 나와 자유하고 해방된 기쁘고 감사한 삶 사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