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중세 서방 가톨릭 교회 개혁을 위해 1517년 10월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에서 이 시대 교회가 관심 가져야 하는 두 가지를 뽑으라면 저는 만민제사장주의(priesthood of all believers)와 성경이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 가운데 개신교는 세례와 성만찬만 성례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니 개신교에서는 목사 안수를 성례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중세의 사제주의(clericalism)가 깨졌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목사 안수를 세례보다 높은 경지로 여기지 않고 역할의 구별로 봅니다. 교회에서 사역하는 성직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일하는 평신도의 일도 거룩한 하나님의 일, 즉 성직임을 제시한 것입니다. 성경이 번역된 것도 라틴어를 배운 사제들만 독점하던 성경해석의 권한을 평신도에게 열어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민제사장주의는 하나님이 평신도들에게도 각양각색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는 필요한 것들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치유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섬길 수 있는 권위와 동시에 은사를 주셨습니다. 루터가 제시한 개혁안 가운데 오늘날 개신교회가 주시해야 할 내용이 ‘교황의 3층 왕관과 발 키스를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의 큰 문제가 목회자들 가운데 자신을 교황과 같은 위치에 놓는 교주 기질이 다분한 위험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단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미주 교계에서 이단 사이비 집단들이 많이 활동하는 곳 중의 하나가 뉴욕입니다. 요즘 이단은 통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과는 다르게, 기성교회와 다르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고 활동합니다. 오히려 아무 차이가 없는 것처럼 들어와서 활동을 합니다. 신천지가 대표적으로 그렇습니다. 아닌 것처럼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분열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교계에서 또 경계해야 하는 부류가 ‘신사도운동’입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사도를 직접 세우시고 이런 사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사적인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사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으면 교인들은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영적으로 대단해 보이는 것 같지만 위험한 발상입니다. 과시적인 영적 능력을 강조하는 모임들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영적 지도자라도 영적인 권위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인정받고 검증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을 신격화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단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만 교주화 된 지도자들은 자기 말과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기를 강요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성을 상실하는 것이나 합리적인 판단 능력을 포기하는 것이 믿음인 것처럼 강요하고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합니다. 그리고 ‘땅 밟고 십자가 심기’라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느 도시나 동네를 사탄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으로 구분하면서 하나님의 영역으로 점령해 나가겠다는 것인데 미신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문제는 이런 미신적인 요소를 신비한 것으로 착각하고 헛된 호기심에 빠지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신앙 그리고 건전한 교회의 바탕에는 성경을 중심으로 한 영성과 지성과 감성이 잘 조화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상’이나 ‘능력’보다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 말씀이 중심이 됩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 흉내 내는 것 허락하지 않고 성경과 신앙공동체의 전통에 근거해서 검증하는 과정을 가집니다. 무엇보다 비상식적인 맹종을 강요하는 것 용납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요즘 교계가 시끄러운 이유가 십자가는 없는 십자군 같은 자기 세력 과시 현상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성찰을 통한 사랑과 은혜가 중심이지만 십자군은 물리쳐야 할 적과 원수를 잘 만드는 미움과 정죄 그리고 영토 확장의 욕망이 중심에 있습니다.
개혁의 중심은 어느 시대나 예수 사랑과 십자가 구원의 은혜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