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의 돌이 굴러졌습니다. 살아나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지 말라고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로 가셨으니 그분을 만나려면 그리로 가라고 천사는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무덤에서 나와 주님이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리라”(요한 14:19) 하신 말씀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보아야 합니다. 보려면 믿어야 합니다. 무덤의 현실에 매몰되지 말고 주님이 무덤의 돌을 옮기셨으니 생명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밉던 사람이 밉지 않고 반가웠습니다. 못나게 여겨졌던 것들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불만스러웠던 것들이 기쁨과 감사 그리고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며칠 전에 제 아내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얼마 전 새벽기도 때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상한 기도가 제 입으로 나갔어요. 예수님 눈이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예수님 손이 가는데 저도 가게 해달라고 하더니 닭똥 같은 눈물이 막 쏟아지면서 그동안 사람들에게 쌓인 섭섭함 미운 감정 등이 제 몸속을 빠져 나갔는 것을 느꼈어요.”
엊그제 오후에 자동차에 가스를 넣으려고 하는데 내가 들어갈 자리에 누가 새치기를 합니다. 성금요일인지라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가스를 다 넣고는 상점에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니 조금 기다려도 될 것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상점에 들어갔습니다. 그 친구가 잔뜩 양손에 자기 먹을 것 마실 것 사가지고 나오는데 제가 화를 냈습니다. “야! 가스를 다 넣었으면 차를 옆에 세워놓고 먹을 것을 사든가 하지 이게 뭐하는 개떡같은 수작이야!” 화를 내면서 금방 후회를 했습니다. 그 친구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몸이 건장한 흑인 청년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주유소 직원도 혹시라도 싸움이 벌어질까 당황해 하고 있는데 이 친구가 활짝 웃으면서 내게 소리를 지릅니다. “헤이 브라더! Easter is coming! Be happy!”(헤이 형제여! 내일 모레면 부활주일이야. 우리 행복하자!” 모두 웃고 말았습니다. 물론 싸우면 내가 집니다. 그 친구가 사람 기다리게 만든 것 물론 잘한 것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조금 기다린 것 때문에 그 친구와 싸울 일은 아니었습니다. 잘못하면 인생 피곤해질 수도 있었는데 그 젊은 친구가 늙은 나에게 “형제여! 예수님 부활하셨다! 우리 행복하자!”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난 인생 돌이켜 볼 때 아찔하고 위험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목사가 되어서도 내 딴에는 정의감에 불타서 용기 있는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인격이 모자라서 나보다 덩치가 몇 배 큰 인간들과 붙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정말 애국가 “하나님이 보우하사…” 아니면 오늘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인생 살면서 때로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지옥과 감옥을 만들며 살기도 합니다. 천국과 사랑 생명도 선택이고 결단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큰 은혜와 사랑에 감사가 큽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로 가야 하는데 오늘 우리의 갈릴리는 어디인가요? 지옥, 무덤, 감옥과 같은 현실을 사는 이웃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 함께하는 천국으로 나와 사랑과 생명을 살도록 돕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