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래는 잘 못부르지만 가끔 흥얼거리는 찬송이 있습니다. “은혜로다 주의 은혜/한량없는 주의 은혜/은혜로다 주의 은혜/변함없는 진실하신 주의 은혜…./예수는 내 삶의 모든 것/난 영원히 주만 따르리/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예수의 이름/예수만 높이리”(작사 심형진)

두해전에 권사님 한 분이 신앙간증을 담은 책 초본을 읽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놀랬습니다. 첫째, 매주일 웃는 모습으로 찬양하는 그분이 그런 어렵고 아픈 삶을 살았다는 것에 놀랬습니다. 둘째, 새벽 말씀묵상과 기도와 예배가 그 삶을 절망에서 소망으로 고난의 흔적들은 은혜의 비밀되게 하심의 비결이었다는 것에 새삼 놀랬습니다. 셋째, 어렵고 힘들 때 함께 기도하고 울어주고 도와주는 교회에서 이루어진 성도의 교제가 그를 살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에 놀랬습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하면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그것들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책 초본을 읽으며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교회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삶의 어려움 가운데서 아름답게 믿음 지킨 권사님이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예수 잘 믿고 예배 잘 드리는 교회’ 되기 위해 올해 하반기 주일예배때마다 외쳤던 구호가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였습니다. 그리고 그 첫 열매가 오늘 이웃초청 주일입니다. 초청한 분들이 다 오시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우리 교인들이 먼저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에 옮기는 분들이 계시다는 그 자체로 감사이고 은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참 기쁘고 감사한 날입니다.

권사님의 삶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살았을 지 던진 질문은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많이 내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정말 예수 안 믿었으면 나는 어떤 인간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조금 잘나갔으면 내 잘난 맛에 까불다가 인생 큰 낭패 보았거나 계속 하나님과 거리가 먼 인생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상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나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그대로 놔두지 않으시고 계속 예수님 새롭게 만나고 또 만나게 하시면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붙잡으셨습니다.

지난 주초 북한 신의주로 들어가는 중국 국경 단동에서 홍수피해지역 어린이들 겨울나기를 위해 모포와 침낭 그리고 쌀을 두개의 트럭에 실어 들여보내기 전에 정희수 감독님은 모포와 침낭을 나는 쌀포대를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함께 있었던 사람들 모두에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가 정감독님에게 “우리는 왜 이런 일 하느라 인생 어렵게 살아야 하나요? 감독님도 그 바쁜 일정에 여기에 와야 했지만 나도 정말 무리해서 왔는데 이 침낭을 덮고 아이들이 겨울을 보다 따스하게 보내고 이 쌀을 북한 어린이들이 먹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행복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 때문이지. 그분 예수님이 우리를 여기로 부르시니 어찌하겠어요.”합니다. 블라디보스톡에 와서도 수양관 한방을 썼는데 침대가 조금만 옆으로 움직이면 떨어질 작은 침대였습니다. 내가 “아니 우리가 이렇게 고생할 군번은 아닌데 나야 그렇다 해도 감독님 고생이 많아요.”했더니 “서는 자리나 눕는 자리나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디라도 거룩한 자리죠. 나는 요즘 나를 쓸모 있게 하시는 주님 은혜 모두 감사하며 살아요.”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이 은혜일 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늘 어디에 어떻게 살아도 천하에 가장 행복한 우리 모두이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