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생명의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어느 아이가 말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를 보고 소리를 쳤습니다. “엄마 저 아이는 왜 침대에서 자지 않고 저런데서 자?” 엄마는 “저 아이는 세상에 많은 다른 아이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기도 가난하기를 원했단다.”라고 답합니다. 그 아이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왜 다른 아이들은 모두 아빠가 있는데 나는 없지?”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아픔이 자랐습니다. 그렇게 자라나면서 세상의 불공평과 불의에 대해 분노하기에 익숙한 그 아이가 예수를 만났고 예수의 손이 자기 손을 잡아줄 때 천하 가장 큰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아이가 훗날 세계적인 빈민구호단체 ‘엠마우스’의 창시자 피에르 신부와 동역을 하게 된 엠마뉘엘 수녀입니다.

피에르 신부는 세계2차대전때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총을 들고 나찌독일과 싸웠습니다. 전쟁후 1949년부터 엠마우스 공동체를 세워 ‘빈민의 아버지’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 가운데 그가 만난 한 사람의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종신형을 받고 살다 20년후에 사면을 받고 나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벌써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고 딸을 보고 싶어 찾아갔더니 딸이 자기를 보고 만나기를 꺼려하더랍니다. 알콜중독에다 결핵을 앓고 있던 그는 결국 어느날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때 그를 만난 피에르 신부님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오. 그러나 당신에게 부탁 하나 하리다. 이 세상에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돕는 일에 날 도와 줄 생각은 없소?”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그에게 던져진 부탁을 듣고는 그는 신부님을 따라 나섰고 둘이서 엠마우스 공동체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조르주였는데 그가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내가 인생을 끝내려 하던 그때 신부님이 만약 나에게 직업이라든지, 빵, 집, 돈을 주려고 했다면, 아마 나는 다시 정말 인생 마치려 했을겁니다. 그때 내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어떤 게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으니까요.”

아기 예수가 우리네 삶에 오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삶의 거룩한 의미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그 예수님을 나누어야 하는 소명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감사주일이 끝나고 미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병이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생 아픔과 외로움의 때는 예수 사랑 나누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엠마뉘엘 수녀의 손을 잡아 준 예수님의 손이 있어서 그녀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마음으로 누군가 손을 잡아줄 때 그에게 그 손은 삶의 소망과 살아갈 이유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손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져있습니다.

그냥 믿음이 아니라 사랑의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강조한 요한 웨슬리의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치있는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면서 헬렌 니어링은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를 인생 화두로 삼고 살았고 엠마뉘엘 수녀도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대강절 더 많이 예수님 사랑 나눌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