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돌이켜 볼 때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이 타이밍이 엇나간 시간들입니다. 앉아야 할 때 일어서고 일어서야 할 때 넘어져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30대에 잘못 일어섰다가 된통 얻어맞고는 기죽어 일어나지 못했던 세월이 좀 길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40대에 바짝 일어나 기고만장한 시간이 길어서 인격과 신앙의 성장이 후퇴한 시간이 짧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유리 지붕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정해 놓은 틀에 나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것이 익숙해서 주체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7월 한 달 설교는 제 자신을 향한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내게 예비하신 하나님 축복을 내가 믿어야 하고 지켜야 하고 매일 하루 가운데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더 의지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내가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 합니다. 돌이켜 볼 때 저는 목사의 큰아들로 자라 목사가 되어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강박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30여 년 전 파송 받은 교회에서 거의 전교인 반대로 강단에 서지 못했던 기막힌 경험을 통해 이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배척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나를 자유케 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와 교단 분리 사태를 보면서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이나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런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내게 주어지고 닥쳐오는 삶의 조건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받아 드리기에 익숙하게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 영어 예배 설교자가 없어서 제가 2년여 설교를 해야 했고 지난 몇 개월 역시 그리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 나이에 내가 이 무슨 고생인가?”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열심히 영어 설교 잘 훈련해서 은퇴하면 목사 없는 미국교회 가서 설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뉴욕에 와서 얻은 가장 큰 건강의 선물이 있습니다. 전에는 1마일도 잘 걷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Fort Totten공원에 나가 3마일씩 걷게 되더니 코로나 기간에는 Jones Beach에 나가 10마일씩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남들이 하는 것 부러워만 했는데 ‘El Camino Santiago’(야고보 순례길) 800 Km 전체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올해 안으로 마지막 100 Km 코스를 한주 작정하고 다녀올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좀 일찍 깨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들은 모두 내게 아픔과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기대했던 일이 있었는데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은 원래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세상의 것들에 실망함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의뢰하도록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