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목사들에게 가장 빨리 지나갔으면 바래는 씨즌이 있다면 성탄절일 것입니다.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바쁘게 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 예수 탄생이 우리 신앙의 거울이 되고 삶의 지표가 되도록 특별히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탄절은 사람들의 축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천국의 축제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와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리라.”(눅 2:14) 어두운 역사 아픔의 땅으로 오셔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기쁜소식을 잘 듣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아기 예수 태어나신 팔레스타인 땅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말구유 앞에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고 내 자신을 들여다 보는 삶의 정직한 발견이 필요합니다. 그 자리에서 목자들이 들었던 그 하늘의 소리를 듣고 누추한 그 땅에 조용히 아기 예수 나신 그 자리를 함께 따듯하게 지켜준 그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았던 세상의 그리스도, 구세주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 천사의 소리를 듣고 말구유에 놓인 예수를 본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를 두려워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인도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가 그렇고 브라질 쌍 파울로의 돔 헬더 까마라 주교, 그리고 원주의 장일순, 동광원의 이현필, 다석 류영모, 우찌무라 간조, 이용도, 마틴 루터 킹, Church of the Savior의 고든 코스비, Koinonia Farm의 클래런스 죠단….수많은 이 땅의 작은 예수로 살다 떠난 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모든 예수의 사람들이 이땅의 작은 예수들입니다..

말구유에 태어난 아기 예수가 이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삶의 열매는 무엇보다 사랑의 나눔일 것입니다. 사랑의 나눔 가운데 우리의 눈과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소망입니다. 기쁨입니다. 평화입니다. 사랑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것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쁜 소식’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임마누엘이라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우리는 교회가 되어 예수님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자기 장례식에서 조사를 할 때 박사학위가 몇 개고 어떤 단체에 어떤 일을 했고 그런 세상적인 평가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나를 정의의 북을 치려고 하던 사람이었다.”고 평가해 달라고 설교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의롭게 변화하기 위해 북을 크게 울린 북소리로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 줄 압니다. 내가 무엇을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나누었는가?로 우리 자신들은 물론 교회도 평가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무척이나 분주하고 시끄럽습니다. 테러의 뉴스는 끊이지 않고 새로운 시대가 평화와 정의를 향한 진보가 아니라 걱정되고 겁나게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더욱 아기예수가 우리 가운데 오심이 귀하기만 합니다. 그분앞에 우리가 다시 서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미래를 보고 소망하며 사랑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일에 쓰임받기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예수탄생을 맞이하며 드리는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 아기시여. 신앙 없이는 차마 알아들을 수 없는 놀라운 약속과 은총의 아기시여/ 우리의 어둠에 어서 불을 켜게 하소서.”(이해인) – 성탄의 계절 우리 모두에게 소망, 사랑, 평화와 기쁨의 불을 켜기 위해 오시는 임마누엘 아기 예수가 함께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