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보수주의 운동가 Charlie Kirk가 연설 중 암살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31살 젊은 나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MAGA 운동을 가장 영향력 있게 추진시킨 지도자였습니다. 지난 6월에는 미네소타 민주당 주 의원 두 명이 정치적 입장에 불만을 가진 사람의 총격으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 어디나 정치 견해가 다른 현실은 존재합니다. 민주주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가는 것이기에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 미워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만 존재하는 세상을 바래서 다른 사람을 없애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악한 언행이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찰리 커크는 ‘Christian Nationalism’(기독교 국가주의)을 설득력 있게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지도자였습니다. 낙태와 동성애를 반대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권리, 환경 문제 등을 ‘과민한 정치적 올바른 것 찾는 문화’(woke culture) 또는 ‘문화 막씨즘’(cultural Marxism )으로 여겼습니다.

왜 미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찰리 커크와 같은 보수주의자를 따르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의 강연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의 주장은 획일적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모든 것에 정답을 말하니 단순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광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답을 고집하지 않고 사랑과 은혜 안에서 해답을 찾는 성숙함을 요구합니다. 무엇보다 개인의 경험과 각자 처해 있는 현실이 다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보수 기독교적 가치관을 함부로 파괴하는 무책임한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보의 무능력함과 교만에 대한 분노가 작용했습니다. 진보 진영은 뼈아프게 자기 잘못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좌나 우 파시스트(facist)들의 문제는 자기성찰은 없으면서 자기들이 정답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교화나 교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교만이 강하고 파괴적입니다.

얼마 전에 아주 유능한 젊은 한인 목사가 미국인 교회 담임이 되어 자기 목회 포부를 말하면서 “백인 부자동네 교인들에게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하기에 제가 “그냥 그 교인들 사랑해” 라고 했었습니다. 모든 것을 인종차별 도식으로 보는 것 위험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면 예수 가치관과 너무 먼 교회가 됩니다.

저는 찰리 커크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젊은 진보 리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런 실력을 갖춘 젊은 리더는 온건 중도이면서 출중한 인격과 실력을 갖춘 앤디 킴 상원의원입니다. 민주당은 이런 젊은 리더들을 지금부터 세우고 지원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보수 진영에 트럼프가 있는 것처럼 진보 진영을 대표할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큰 리더가 없으면 젊은 리더들을 지켜 줄 울타리가 없어 공격이 오면 쉽게 당할 수 있습니다.

찰리 커크의 죽음은 민주주의를 뒤로 돌려놓았습니다. 그가 암살당한 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그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빈다. 이런 행위는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악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씨앗이 되어 더 이상 정치 신념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사라지고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토론과 표 대결을 통해 미국을 진정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 가는 새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