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

나눔의 넉넉함이 축복이고 행복

지난 몇년간 1.7백만 베네수엘라 난민이 콜롬비아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몇년 전 부터 밀려오는 수만명의 난민을 국경 경비대가 막아낼 도리가 없다며 정부에 연락을 했더니 대통령이 먹고 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니 막지 말라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콜롬비아 현지인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느낀 것이 콜롬비아 사람들의 마음이 넉넉하고 예의가 바른 문화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인종차별이 없다는 말에 더욱 놀랬습니다. 세미나 [...]

2022-05-15T08:27:27-04:00May 15th, 2022|

사랑의 경계와 계절

누가 그러네요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 골라서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 세상 직원을 채용할 때는 그렇지만 가정이나 교회는 사람을 골라서 만들어진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고쳐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서 다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도록 하신 것도 고쳐서 쓰신 것입니다. 신경정신과 양창순 박사는 가족에 대한 이라는 칼럼에서 가족이란 서로를 가장 아끼고 [...]

2022-05-07T19:59:15-04:00May 8th, 2022|

기막힌 현실을 기적의 현실로

“사람을 찾습니다.” 며칠 전 김성찬 감리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우리 지방에 있는 어려운 미국 교회에 후러싱제일교회 교인이 적지않은 헌금을 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선교비를 따로 보낸 교회입니다. 교회 건물이 망가져도 고치지 못하고 있었더니 시당국의 벌금 받고 잘못하면 폐쇄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감리사님이 교인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라 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이전에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후러싱제일교회를 [...]

2022-05-01T08:24:19-04:00May 1st, 2022|

모퉁이에서 피는 역사를 기다리며

얼마 전에 고 이정용교수님의 신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임찬순 목사에게 “이 교수님이 살아계시면 오늘 우리 교단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뭐라 말씀하실까?”라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엊그제 제가 던진 질문과 관련해서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하는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오고 드류신학교에서 이 교수님 밑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는데, 항상 만날 때마다 제게 질문을 많이 하는 [...]

2022-04-23T22:06:14-04:00April 24th, 2022|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부활의 증인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3년차를 맞이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스크 쓰고 사는 것 정도는 답답해도 견뎌낼만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아픔과 슬픔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생업의 어려움, 막히고 닫힌 인생의 현실을 견뎌내야 합니다. 교회들도 이미 많이 문을 닫았고 앞으로 1/3정도 더 그럴 것이라 합니다. 무덤 문을 가로막은 큰 돌이 열려야 하는데 [...]

2022-04-17T08:26:01-04:00April 17th, 2022|

고난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들

금요일 오전 올림픽 드림 선교 센터 기공식을 마치고 온두라스에서 떠나 오는 날 비행기가 캔슬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일찍부터 공항 카운터 앞에 한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니 주일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목사인데 이번 주가 고난주일이기에 꼭 가야한다고 사정을 했습니다. 직원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니 좀 높은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한참이나 찾는데, 안되는지 난감해 합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

2022-04-10T09:33:28-04:00April 10th, 2022|

공감 능력 상실 조직의 쓴 맛

요즘 저는 ‘조직의 쓴 맛’ 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살아갑니다. 조직이라는 것이 개인(개교회)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해 준다면 좋지만 존재 목적을 상실하고 개인을 도구나 수단으로 여기게 되면 개인은 초라한 존재가 됩니다. 2,000년 전 예수 운동이 조직화된 교회가 되었고 로마제국때 국교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중심 한 축이 오늘의 로마 가톨릭 교회이고 마틴 루터나 깔뱅과 같은 [...]

2022-04-02T20:25:44-04:00April 3rd, 2022|

복음적 교회되기 위하여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을 보고 이진숙은 ‘시대를 훔친 미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을 보듬는다. 손끝에 전해지는 아들의 몸, 그 촉감, 떠나기 전 아들의 머리털은 탐스럽고 육체는 탄탄하며 건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 말없이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의 육체를 보듬는 순간, 아버지는 안다. 아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비난보다 앞선 이해, 따지고 묻는 말보다 더 깊은 [...]

2022-03-27T08:48:14-04:00March 27th, 2022|

나는 귀한 사람이다!

1970년대 초 고등학생 때 이민 와서 영어 못하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작고 큰 인종차별의 경험으로 열등의식에 가득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 청소년기와 청년시절 큰 힘이 된 것이 제시 잭슨 (Jesse Jackson) 목사님 연설 중 18번, “나는 귀한 사람이다!”(I am Sombody!)와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 였습니다. 이민초기 가족들이 저녁 식사가 [...]

2022-03-19T22:27:44-04:00March 20th, 2022|

왜 집요하게 예수를 죽이려고 했을까?

사순절 둘째 주일인 오늘 교회력에 따른 누가복음 13장 본문을 보면 바리새파들이 예수님에게 헤롯 왕이 죽이려고 하니 도망가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뭘 그리 잘못하셨나요? 성전 세금으로 먹고 사는 제사장, 사두개파와 온 유대민족을 율법에 따라 살도록 만들겠다는 평신도 그룹인 바리새파는 앙숙이었습니다. 로마황제가 임명하는 분봉왕 헤롯은 괴뢰정권이기에 모두 싫어했습니다. 헤롯과 로마총독 빌라도는 세력다툼의 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예수님을 죽이는 [...]

2022-03-13T08:28:43-04:00March 13t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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