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정호
지난 5월 중순 포트랜드에서 열렸던 연합감리교 4차년 총회 이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연합감리교단의 현 ‘장정’(Discipline)에 있는 그대로 동성애자들의 안수를 금하는 조항이 유지될 것인지 바뀔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었지만 총회의 결정은 결정을 보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4차년총회 이후 모이는 각 연회(annual conference)마다 이 사안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연합감리교단은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를 포함한 해외 총대들이 근 30%이기에 보수입장이 당분간 고수될 것이지만 미국내 서부와 동부지역의 연회들은 대부분 진보입장입니다. 며칠 전 열린 보스톤지역 뉴잉글랜드 연회에서는 전면적으로 현 ‘장정’에 있는 동성애자 안수금지 조항들에 대해 거부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뉴욕연회는 연회차원은 아니지만 성직위원회 자체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회들의 행보에 대해 우려가 있습니다. 개혁이 아닌 분열의 결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단의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과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창조적인 기회의 기대를 동시에 가집니다. 때로 바닥에 내려와야 다시 새롭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닥의 현실을 보아야 무엇이 진정 지켜내야 할 것이고 무엇을 내려놓고 버려야 할지 제대로 된 판단을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합감리교회(UMC) 슬로건이 “Open hearts, Open minds, Open doors”(열린 마음, 열린 생각, 열린 문)입니다. 열린 교회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열리고 교회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숙한 신앙과 신학이 요구됩니다. 열린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요한 웨슬레가 말한 것 처럼 “In Essentials, Unity. Non-Essentials Liberty. All things Charity.”(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일에 사랑)의 정신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치(unity)와 획일(uniformity)은 아주 다릅니다. 일치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획일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인내와 포용과 사랑과 은혜가 요구됩니다. 획일은 목소리 큰 사람이나 힘있는 사람이 밀고 나가면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문화나 독재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획일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UMC는 “Unity in Diversity”(다양함 속에서 일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UMC에 속한 교회라는 것이 제도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건강하고 건설적인 신앙과 신학 때문에 자랑스럽습니다.
요한 웨슬레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는 Methodist 운동의 목적을 ‘영국 교회를 참된 교회로 개혁하는’(to reform the Church of England)과 ‘민족을 개혁하는 것’(to reform the nation) 그리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to spread scriptural holiness throughout the land)이라 했습니다. 그가 꿈꾼 것은 교단을 세우는 것이기 보다 이 거룩한 사명을 이루는 복음적 운동체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대 회복해야 할 너무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큰 나무는 숲 속에서 다른 나무와 함께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flag ship church’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정말 제대로 그리 되어야 합니다. 큰 나무가 된다는 교만이 아니라 함께 자라가야 하는 사명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힘들어도 열린 마음, 생각, 문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